2009년 겨울, 대한민국 고고학계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 해체 현장에서 발굴된 작은 금판 하나로 발칵 뒤집혔다. 선명한 붉은 글씨로 새겨진 '금제사리봉안기'는 우리가 오랜 세월 믿어왔던 낭만적인 설화 하나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다. 미륵사를 창건한 것이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주인공인 신라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최고위 귀족인 좌평 사택적덕의 딸 '사택왕후'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대체 사택씨(沙宅氏) 가문이 누구이길래, 신라 공주의 자리를 밀어내고 백제 최대의 국책 사업이었던 미륵사 창건을 주도할 수 있었을까?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필두,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백제 후기 정국을 논할 때 이른바 '대성팔족'이라 불리는 8대 귀족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의 정사인 『수서』 등에 기록된 사(沙), 연(燕), 협(劦), 해(解), 진(眞), 국(國), 목(木), 백(苩)씨 8개 가문은 백제의 실질적인 지배층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서열 1위는 가장 먼저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씨, 즉 사택씨였다.
이 막강한 가문의 뿌리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하나는 금강 하구와 익산(금마저) 일대의 광활한 모래사장(砂)을 기반으로 성장한 마한계 토착 세력이라는 설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바다 건너 중국 양자강 일대나 동이족에 뿌리를 둔 이주 세력이라는 '대륙 기원설'이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웅진 천도 이후 금강의 수운을 장악하며 백제의 새로운 실세로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양자강의 파도를 탄 '글로벌 오피니언 리더'
사택씨 가문의 진정한 힘은 단순한 군사력이나 토지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서해의 거친 조류를 뚫고 중국 양자강 이남의 남조(南朝)와 직접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수입하던 거대한 해상 세력이었다. 양나라를 비롯한 남조의 세련된 귀족 문화는 사택씨가 구축한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백제 부여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이 바로 의자왕 대의 실권자였던 사택지적이 남긴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다. 반듯하게 구획된 화강암 위에 남조의 최신 유행 글씨체인 구양순체로, 그것도 고도의 수사학인 사륙변려체를 구사하여 인생의 무상함을 새겨 넣었다. 이 비석은 사택씨 가문이 단순한 무장이나 정치꾼이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철학과 문학을 향유하던 지식인이었음을 묵묵히 증언한다.
미륵의 꿈과 법화의 현실이 만나다
사택씨 가문의 권력이 절정에 달했던 무왕 시기, 그들의 종교적 지향은 국가의 운명과 교차한다. 왕권 강화를 꿈꾸던 무왕은 스스로를 세상을 구원할 전륜성왕에 빗대며 '미륵신앙'을 내세웠다. 반면, 사택씨 가문은 전통적으로 대승불교의 『법화경』을 중시하는 '법화신앙'을 신봉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왕실의 미륵신앙과 귀족의 법화신앙은 익산 미륵사라는 거대한 공간 안에서 극적으로 타협한다. 3개의 탑과 3개의 금당이라는 세계 불교사에 유례가 없는 미륵사의 독특한 구조는, 왕권과 귀족권이 종교를 매개로 연합하여 백제의 중흥을 이끌어내려 했던 고도의 정치적 예술 작품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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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포털 |
패자의 역사 속에 묻힌 진취적 해상 제국의 꿈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의자왕의 강력한 왕권 강화책과 친위 정변에 휘말려 사택씨 가문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할 당시, 일부는 장안으로 끌려가고 일부는 부흥운동에 목숨을 걸었으며, 살아남은 이들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망명했다. 비록 나라는 망했지만, 그들이 지녔던 압도적인 문화적 역량은 훗날 일본의 율령 제정과 고대 국가의 기틀을 닦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백제를 '패배한 국가' 혹은 '의자왕과 삼천궁녀'라는 낡은 프레임으로만 기억해 왔다. 그러나 사택씨 가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한반도 남서부에 갇힌 좁은 나라가 아니라 양자강과 현해탄을 아우르며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를 주도했던 진취적인 '해상 제국 백제'의 진짜 얼굴을 만나게 된다. 서동요의 낭만을 걷어낸 자리에는, 이처럼 치열하고 눈부셨던 백제인들의 글로벌한 족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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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