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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코너] 대한민국에서 가장 ‘고집 센 성씨’는 어디일까?“김씨 셋이 최씨 하나 못 당하고, 최씨 셋이 강씨 하나 못 당하고…” 성씨에 얽힌 유쾌한 고집 이야기

우리나라에는 성씨를 놓고 사람의 성격을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속설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고집 센 성씨’ 이야기다.

“살아 있는 김(金)씨 셋이 죽은 최(崔)씨 하나를 못 당하고, 최씨 셋이 모여도 강(姜)씨 하나를 못 당하며, 강씨 셋이 모여도 안(安)씨 앉은 자리를 못 넘본다.”

지역과 사람에 따라 순서와 표현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오래전부터 우스갯소리처럼 전해져 온 이야기다.

여기에 한 성씨를 더 보태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황소고집’ 못지않다는 황(黃)씨다.

그렇다면 정말 성씨에 따라 고집의 세기가 달랐을까?

물론 성씨와 성격 사이에 과학적인 연관성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이런 이야기가 생겨난 배경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단순한 ‘똥고집’이 아니라 절개와 의리, 예법과 신념을 지키려 했던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안씨 고집 ― 목숨보다 지조를 택하다

안(安)씨 고집의 유래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순흥 안씨와 조선 세조 때의 역사다.

1457년 순흥부사 이보흠과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면서 순흥 지역에 큰 화가 미쳤고, 순흥은 한동안 폐부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러한 역사와 맞물려 순흥 안씨의 강직함과 지조가 후대에 ‘안씨 고집’이라는 이미지로 전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안씨 하면 근대사에서는 안중근 의사도 떠오른다. 물론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과 ‘안씨 고집’을 직접 연결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한번 옳다고 판단한 길에서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강직함을 두고 사람들이 ‘안씨다운 고집’이라 표현했을 법하다.

그래서일까.

“강씨 셋이 모여도 안씨 하나 못 당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다.

강씨 고집 ― 나라가 바뀌어도 마음은 바꾸지 않는다

강(姜)씨 역시 고집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다.

민간에서는 고려 말 충신들이 왕조가 바뀐 뒤에도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새 왕조의 벼슬을 거절한 이야기를 ‘강씨 고집’의 유래 가운데 하나로 설명하기도 한다.

왕조가 바뀌었으니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살아가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섬긴 임금과 나라에 대한 의리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고집이라기보다는 ‘절개’에 가깝다.

세상이 모두 오른쪽으로 간다고 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홀로 왼쪽에 서 있을 수 있는 사람. 옛사람들은 그런 강직함을 강씨의 이미지와 연결했던 모양이다.

최씨 고집 ― “내 무덤에 풀이 나는지 보라”

고집 하면 가장 유명한 역사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고려 말 최영 장군이다.

최영 장군에게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내가 탐욕이 있었다면 무덤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뒤 실제로 최영 장군의 무덤에 오랫동안 풀이 잘 자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적분(赤墳·붉은 무덤)’ 전설이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최씨 앉은 자리에는 풀도 안 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연결되곤 한다.

죽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다.

그래서 “살아 있는 김씨 셋이 죽은 최씨 하나를 못 당한다”는 말까지 나왔는지도 모른다.

사실이라기보다 최영이라는 인물이 후세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직한 인물로 기억됐는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민간의 표현이라고 보는 편이 좋다.

그런데 진짜 ‘끝판왕’은 황씨?

안씨·강씨·최씨가 서로 고집의 우열을 다투고 있을 때 슬그머니 등장하는 성씨가 있다.

황(黃)씨다.

그런데 황씨 고집 이야기는 한술 더 뜬다.

황씨의 고집과 관련해서는 조선시대 인물 황순승과 관련한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사실관계와 세부 내용은 별도의 문헌 검증이 필요한 민간 전승의 성격이 강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상당히 흥미롭다.

어느 날 다리를 놓았는데 다리에 사용한 흙이 오래된 무덤 주변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을 듣자 “남의 무덤 흙을 밟을 수 없다”며 평생 그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의 부음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일을 보러 가던 차림으로 곧장 조문하는 것은 죽은 친구에 대한 예가 아니라며 먼 길을 되돌아가 의관을 정제하고 다시 조문을 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더 놀라운 이야기도 있다.

조상 제사에 사용할 쌀을 생산하는 논을 특별히 정결하게 관리했는데 하인이 그 논에서 방귀를 뀌었다는 이유로 물을 갈고 오랜 기간 정화한 뒤에야 다시 제사용 벼를 재배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웃음부터 나오는 이야기다.

성묘를 갈 때도 멀리서 조상의 산소가 있는 산이 보이기 시작하자 말에서 내려 걸었다고 한다.

“조상님의 묘가 보이는데 어찌 말을 타고 갈 수 있겠는가.”

이 정도라면 고집이라 해야 할지, 예법에 대한 집념이라 해야 할지 판단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이 황씨 고집을 두고 ‘황소고집’에 빗대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최고의 고집은?

재미 삼아 순위를 매겨본다면 이야기는 끝이 없다.

김씨 셋을 이기는 최씨,
최씨 셋을 이기는 강씨,
강씨 셋도 못 움직이는 안씨,
그리고 옆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황소고집’ 황씨까지….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의외로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옛사람들이 말했던 ‘고집’은 반드시 나쁜 의미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고집이라면 그것은 아집(我執)이 된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우기는 것은 억지다.

그러나 옳다고 믿는 원칙을 이익 때문에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신’이고, 어려움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절개’이며, 사람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다면 ‘의리’가 된다.

결국 고집과 신념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틀린 것을 알면서도 버티면 고집불통이지만, 옳은 것을 알기에 끝까지 버티면 신념이 된다.

그래서 안씨·강씨·최씨·황씨에 얽힌 옛이야기를 듣다 보면 웃음 끝에 묘한 교훈 하나가 남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고집이 없어도 문제지만, 아무 고집이나 세도 문제다.

버려야 할 고집은 과감히 버리고, 지켜야 할 원칙에서는 천하가 뭐라 해도 물러서지 않는 것.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이야기했던 진짜 ‘고집 센 사람’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 앞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 “당신 참 고집 세네!”라고 한다면 무조건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겠다.

한번 이렇게 물어보자.

“그 고집이 똥고집입니까, 아니면 신념입니까?”

그리고 혹시 성씨가 안씨, 강씨, 최씨, 황씨라면….

대답하기 전에 한 번쯤 웃어도 좋겠다.

“우리 집안 내력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 이 글에 소개된 ‘성씨별 고집’과 인물 관련 일화 가운데에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후대에 각색되거나 민간에서 구전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성씨와 개인의 실제 성격에는 아무런 과학적 연관성이 없으며, 우리 성씨 문화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살펴보기 위해 구성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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