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언론은 그를 단숨에 ‘학문의 자유를 지켜낸 투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대통령과의 회의 자리에서 위서(僞書) 논란이 있는 『환단고기』를 두고 설전을 벌이다 괘씸죄로 직무정지를 당했고, 사법부의 가처분 인용으로 극적으로 복귀했다는 서사다. 최고 권력의 비합리적 개입에 맞서 소신을 굽히지 않은 참된 지식인의 드라마로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얼개다. 그러나 이 매끄러운 영웅 서사는 사태의 실체를 교묘하게 가리는 거대한 착시이자 편리한 프레임 왜곡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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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직무정지와 감사는 어느 날 갑자기 터져 나온 단 한 번의 ‘고대사 언쟁’ 때문에 벌어진 돌발 참사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학자로서, 나아가 국책 연구기관장으로서 오랜 세월 축적해 온 편향된 역사관과 누적된 부적격 행보, 그리고 공공기관 운영상의 심각한 행정 비위가 임계점에 달해 터져 나온 필연적 귀결이었다.
박 이사장이 민족진영과 학계로부터 거센 지탄을 받아온 뿌리는 깊다. 그는 2006년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기획하고 공동 편집하며 대한민국 뉴라이트 역사학의 토대를 닦은 핵심 인물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를 수탈과 저항의 관점이 아닌 ‘제도적 근대화’의 관점으로 재단하고, 친일 지식인들의 부역을 제국 질서 속의 복합적 내면으로 포장했던 그 논리는 이후 ‘식민지 근대화론’과 『반일 종족주의』로 이어지는 역사 왜곡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가 2023년 말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내건 일성 또한 “우물 안 개구리식 국수주의 탈피”였다. 주변국의 노골적인 영토 도발과 역사 왜곡에 맞서 민족의 역사적 정통성을 수호해야 할 국책기관의 수장이, 취임 일성부터 자국의 역사 방어 전선을 ‘국수주의적 자기도취’로 폄훼한 것이다. 영국 제국주의를 연구한 서양사학자의 잣대로 식민지 피압박 민족의 저항과 영토 주권 수호 의지를 탈민족주의라는 미명 아래 탈색시키려 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온 것은 지극히 온당한 반응이었다.
더구나 교육부 감사와 직무정지의 공식적 처분 사유는 역사관 설전이 아니라 실정법적 비위였다. 재단의 독도 홍보 및 연구 예산이 삭감되던 위기 속에서, 기관장들의 비공개 울릉도·독도 답사 비용을 ‘영토주권 수호 및 독도 학제 연구’ 사업비에서 부적절하게 편법 전용해 집행한 사실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낱낱이 드러났다. 회계 질서 문란과 직무 태만에 따른 엄정한 감사를 두고, 마치 고대사 문헌 하나를 지키려다 정권의 핍박을 받은 양 ‘정치적 순교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역사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본질적으로 이번 사태는 동북아역사재단이라는 기관이 안고 있는 오랜 ‘배임(背任)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침탈 및 교과서 왜곡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라는 국민적 염원과 국고로 세워진 방어 기지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재단이 보여준 행적은 ‘국익 수호’가 아니라 가해국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추인하는 ‘적전분열’에 가까웠다.
8년간 국고 47억 원을 쏟아부었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의 참담한 폐기가 대표적이다. 한반도 북부를 중국 한나라의 직할령으로 못 박는 낙랑군 평양 비정 고수, 만리장성의 동단을 황해도까지 끌어들인 지도 제작, 심지어 독도 표기 누락에 이르기까지, 재단의 결과물은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이적(利敵) 행위라는 거센 지탄을 받고 결국 퇴출당했다. 국고를 지원한 미국 하버드대 한국고대사 프로젝트(EKP) 역시 같은 논리로 중국 군현의 영역을 한반도 내륙 깊숙이 인정하며 국제 학계에 동북공정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가처분 인용이라는 잠정적 절차를 틈타 박 이사장은 언론을 통해 ‘상식과 학문의 수호자’로 둔갑했다.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던 뉴라이트의 이론적 대모이자, 영토 주권 예산을 부적절하게 다루다 감사를 받은 당사자가, 단지 『환단고기』라는 손쉬운 먹잇감을 발판 삼아 ‘투사’의 월계관을 쓴 촌극이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 연구의 학문적 객관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객관성이란 미명 아래 자국의 주권과 피해의 역사를 가해자의 렌즈로 재단하고, 국민의 혈세를 주권 훼손 사업에 낭비하는 행위까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박지향 이사장과 동북아역사재단은 ‘환단고기 논쟁’이라는 알리바이 뒤로 숨지 말아야 한다. 지금 국민이 묻고 있는 것은 고대사 문헌의 진위 따위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책 역사 연구기관이 왜 침략국의 역사 침탈 논리에 번번이 동조해 왔는가, 그리고 그 최전선에 서야 할 기관장이 왜 식민사관의 아류라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준엄한 질문이다. ‘투사’의 가면을 벗고 역사와 국민 앞에 그 책임을 정직하게 증명해야 할 때다.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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