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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철의 『한국인의 근원을 찾아서』 9편- 한국은 정신의 나라

한국인을 이야기 할 때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선비다. 한국인은 극단極端으로 모두 설명할 수가 있다고 했다. 고대의 기록인 한자의 의미를 처음으로 정의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보면 한국인, 즉 동이족을 일러 ‘동이 종대 대인야, 東夷 從大 大人也’ 라고 적고 있다.

풀이하면 동이족은 ‘큰뜻을 따르는 큰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동이족은 종대從大, 즉 대의를 따르고, 대인大人이라고 적고 있다. 한국인의 상징적인 인물로 내세울 수 있는 두 사람이 있다. 하나는 대인이고 하나는 선비다.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인물은 ‘선비’라는 인물에서 발원한다. 조선시대의 선비를 떠올리지만 보다 웅혼하고 개방적이었던 고대 한민족의 정신문화를 발원시킨 사람을 말한다.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개방에서 폐쇄로 방향을 틀었지만 선비정신은 여전히 곧고 강단 있는 정신의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의 상징적인 인물로 현재하고 있는 것은 우선은 선비고 내면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 대인이다. 선비는 꼬장꼬장하고 강직하며 따지기 좋아한다. 그리고 논리적이며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정치하는 학자다.

반면에 우리의 내면 속에 숨겨져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잠재된 의식이 대인기질이다. 대인은 뜻이 크고 개방적이며 도전적이다. 결정을 할 때 큰 것을 보고 결정하루 때는 대담하다. 없는 것에서도 도전할 수 있는 대범함이 있다. 정주영 같은 인물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선비의 기질과는 대비된다. 서로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두 인물이 들어있다.

현재의 상황이 작은 나라임에도 중화학을 지향하고,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선비기질은 공부하는 인물로 연구하고 계산하는 학자형의 존재다. 컴퓨터나 정보통신 같은 분야에 맞는다. 그리고 지금의 정치상황을 보면 그대로 선비기질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힘으로 상징되는 황제의 문화를 만들어냈다면 일본은 칼로 상징되는 무사의 문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중국의 문화는 황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과장된 문화를 보인다. 힘의 통치를 상징할 수 있도록 크고, 높고, 화려하며, 자금성처럼 인위적인 모습을 극대화하려 한다.

반면 일본은 칼로 대변되는 무사의 비장감과 예리함이 좌우대칭과 상하의 비례를 중요하게 여기는 정형의 미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인위적인 것이 강하다. 금각사처럼 건물 전체를 금칠을 하거나 얼굴에 흰색을 전부 칠하는 등 인위적인 모습과 단호함을 보여주는데 규범적인 면이 강하다.

한국의 경우는 이들과 사뭇 다르다. 붓과 책으로 상징되는 선비는 요즘으로 이야기하면 학자다. 학자가 국가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인과 선비는 다 같이 정신의 존재다. 정신적인 존재는 황제의 힘이나 칼의 무사와는 다르다. 정신은 밖으로 드러내려하지 않고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한국의 미는 자연미와 단순미로 귀결된다. 인위의 반대인 자연스러움, 다시 말해 천연덕스러움을 미덕으로 삼는다. 정신적인 고양과 수양을 하는 사람이 힘자랑이나 칼로 제압하려 하지 않는다. 소통과 통합을 통하여 설득하고, 교육하고, 유대를 통한 조화로움을 강화하려한다. 한국의 건축물이나 조형물은 자연스럽고 소박하며 눈에 튀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되 주위와 잘 어울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다. 자연과의 교감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

그래서 한국문화는 대인과 선비로 상징되는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다.

▲ 신광철 작가, <극단의 한국인 극단의 창조성>의 저자. 시인-작가며 한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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