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쿨 호수 노을 앞에서
외쳐 보고 싶다
일동 차렷!, 경례!, 쉬어!
노을의 군기를 바짝 잡아
날 우러르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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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에서 노을을 바라보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거대한 노을 앞에서 감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한번 호령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일동 차렷! 경례! 쉬어!’ 군대에서 익힌 구령을 끌어와 노을의 군기를 바짝 잡아 보기로 했습니다. 감히 나를 우러르게 만들겠다는 심산입니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납니다.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대신, 잠시나마 그 거대한 풍경을 내 발아래 두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참 자주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주눅 들고, 남의 성취 앞에서 내 삶을 초라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다 정작 나 자신을 우러러보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그래서 노을에게 호통을 쳐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노을이 제 구령을 들을 리 없고, 호수의 물결이 제게 경례할 리도 없습니다. 그래도 어떻습니까. 시 속에서만큼은 마음껏 큰소리 한번 쳐보는 것입니다.
사진 속 노을은 여전히 제 빛으로 물들고, 수상 가옥은 말없이 물 위에 서 있습니다. 제가 호령한다고 달라질 풍경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그 앞에 선 제 마음일 것입니다. 세상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자신에게 가끔은 이런 허풍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자존감이란 세상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이 아무리 크더라도 나를 함부로 작게 만들지 않는 마음일 테니까요. 오늘은 저도 한번 외쳐 보고 싶습니다. 일동 차렷! 경례! 쉬어!
김영익 시인
시집《아름다운 사기를 알아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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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익 시인 tanky123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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