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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일본 문화 넘어 일본 국가 탄생의 기원 밝혀

‘환단고기 공부모임 5회차’ 강연이 10월 8일(목) 오후 2시,수운회관 14층 1411호에서 열렸다. 강사는 김철수 박사(세계환단학회 회장)이며, 강연 주제는 "환단고기와 일본의 기원"이다.

고대 한일 관계사와 일본 국가의 뿌리를 둘러싼 학술적 논의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일본 문화의 형성에 한반도 고대 세력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이어져 왔으나, 일본이라는 국가(왕조)의 성립 자체가 한반도 및 북방 부여계 세력의 주도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사료적 분석을 제시했다. 곧 『환단고기(桓檀古記)』는 단순한 신화나 기원 설화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일본 문화의 뿌리는 물론 일본 최초의 통일 국가인 야마토 왕권(大和王權)의 형성 및 국가적 기원 전반을 입증하는 결정적 사료를 담고 있다. 『환단고기』 내 『단군세기』와 『태백일사』 등의 기록은 고대 한반도의 정신문화와 제천의식이 일본 열도로 건너가 현지 신앙의 모태가 되었음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단군조선 시대의 ‘소도제천(蘇塗祭天)’ 문화와 광명신앙, 백산신앙은 일본으로 건너가 신사(神社) 문화로 정착되었다. 특히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등 일본 측 고대 사서에 등장하는 최고 신격인 ‘조화삼신(造化三神)’과, 삼신 중 고황산령존(高皇産靈尊)의 관념은 『환단고기』의 삼신(三神) 사상과 일치한다. 또한, 일본 고대 신화 속 고천원(高天原) 강림 설화에 등장하는 ‘구시후루다케(槵觸峰)’의 위치 기술 중 “이곳은 한국(加羅國)을 향하고 있고, 아침 해가 비추는 매우 좋은 땅”이라는 대목 역시, 한반도로부터 건너간 천손(天孫) 문화와 삼신제천의식이 일본 고대 국가의 신화적 기반으로 자리 잡았음을 뒷받침한다. 
최근에는 ‘야마토 왕권의 뿌리와 미와산(三輪山)에 숨겨진 삼신사상’이라는 글을 학술지에 발표하여 일본 고대 국가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야마토 왕권(大和王權)과 그 영적 중심지였던 나라현(奈良県)의 미와산(三輪山)을 동북아 대륙의 정세 격변과 부여계 이주 집단의 '삼신사상(三神思想)' 전파라는 시각에서 재조명하여 일본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나갔다.

이러한 『환단고기』는 일본 국가 정통성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건국 신화와 초기 천황의 실체에 대해 구체적인 시기와 인물 기록을 제공하고 있다. 1차 정벌(BCE 723년, 35세 사벌단군)인 ‘장수 언파불합(彦波弗哈)을 보내 바다 건너 큐슈 남부의 토착 세력인 웅습(熊襲·쿠마소)을 평정하고, 2차 정벌(BCE 667년, 36세 매륵단군)인 언파불합의 아들 협야후 배반명(陜野侯 裵幋命)이 바다를 건너 삼도(三島)와 왜인을 완전 평정한 기록이다.

일본 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초대 신무천황(神武天皇)의 부친을 ‘히코나기사타케우가야후키아헤즈노미코토(彦波瀲武鸕鶿草葺不合尊)’로, 신무천황의 어릴 적 이름을 ‘사노(狹野尊)’로 기록하고 있다. 『단군세기』의 언파불합은 일본 사서의 우가야후키아헤즈에 대응하며, 길림 신라계 출신으로 협야후에 봉해진 협야노/배반명의 동생(반여언)이 바로 일본을 통일하고 가시와라궁에서 즉위한 초대 신무천황이다. 이는 일본의 건국 사사(東征)가 한반도 단군조선 조정의 명령과 정벌 작전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학술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대목은 3세기 말 부여 세력의 일본 열도 진출과 일본 최초의 통일 왕조인 ‘야마토 왜(大和 倭)’의 건국 기록이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 따르면, ‘285년 선비족 모용외(慕容廆)의 침략으로 서부여(연나부부여)가 위기에 처하자, 의려왕(依慮王, 혹은 아들 의라依羅)은 수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백랑산을 넘어 바다를 건넜다. 그는 일본 열도로 들어가 왜인을 정벌하고 왕이 되었으며, 스스로 “삼신(三神)의 부명(符命)에 응하였다”고 선언하고 하례 의식을 거행했다.’

이 기록은 현대 역사학계에서 일종의 ‘고대사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4세기 공간(266~413년 중국 사서의 왜국 기록 부재)’ 및 ‘야마토 왕권의 급작스러운 출현’을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일본 사학계에서 실존이 확실시되는 초기의 천황들인 숭신(崇神)·응신(應神)왕의 재위 시기(3세기 말~4세기) 및 대륙 이주민 수용 기록, 전방후원분 고분 문화의 출현 등은 의려(라)왕의 동진 시기와 완벽히 궤를 같이한다. 일찍이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등이 주장했던 ‘북방계 기마민족의 일본 정복 및 야마토 왕권 창설설’이 『환단고기』의 의려왕 도해 기록을 통해 문헌적으로 명확히 증명되는 셈이다.

『환단고기』가 그동안 일제 식민사학과 기존 영토 중심 사학에 의해 정사(正史)로 인정받지 못했던 한계를 넘어, 동아시아 고대 국가 형성사를 재구성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1차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환단고기』는 단순히 문화가 전파되었다는 수준을 넘어, BCE 8세기 신무천황의 기원에서부터 3세기 말 부여 의려왕의 야마토 왕권 건설에 이르기까지, 일본이라는 국가의 탄생과 통일 왕조의 기원이 한반도 및 북방 부여 문명에 있음을 명확히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고고학적 발굴 성과 및 동아시아 삼국의 사료 비교 연구를 통해 『환단고기』에 기록된 고대사의 진실을 명확히 밝혀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환단고기』 연구자들도 50여년 전 주장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자료비판과 지피지기의 학문적 태도로 기존 주장들에 대한 비판적 성찰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연구와 발굴 성과를 적극 활용한 입증작업을 계속해나가지 않으면 공감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환단고기 공부모임 6회차는 22일(목) 오후 2시 수운회관 14층 1411호에서  대학 시절 이유립 선생 문하에서 『환단고기』를 수학한 오정윤 단학회 이사를 초청하여 통일운동의 아버지 문익환 목사, 범민련 남측의장 강희남 목사, 통일신학의 거목 박순경 교수, 그리고 이해학 목사까지. 격변의 현대사를 이끈 민주·통일운동의 대부들은 왜 그토록 『환단고기』와 단군에 주목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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