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양잠신(養蠶神) 받들었던 하타씨(秦氏, 진씨) 가문
오사카 지역 아카루히매의 무명 베틀 산업 뿐 아니라, 특히 일본 교토 지역하면 고대 신라인들의 비단 대량생산의 옛 터전으로 너무도 자랑스러운 고장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모두에 밝혔듯이 교토 땅 그 자체가 일찍부터 신라인들이 개척한 일본의 옛 왕도였기에 지금도 교토에는 누에사당이 자리 잡아 오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은 엉뚱하게도 ‘교토 땅이 일본인들의 비단 옛 터전’이라고 세계에 자랑삼으면서 소위 ‘니시진오리회관’(西陣織會館)이라는 비단 짜는 전시관을 세워 떠들썩하니 내세우고 있다.
그게 사실인가. 아니다. 일찍부터 양식 있는 일본 학자들은 교토의 양잠문화가 고대 신라인들에 의하여 형성된 훌륭한 직조문화라는 사실을 여러 저명 학자들이 진솔하게 밝혔었다.
이를테면 교토제국대학 지질광물학과 이시바시 고로(石橋五郞, 1877~1946) 주임교수는 우리나라의 3․1독립운동 직후였던 1919년 10월, 일본 군국주의 치하에서 간행한 자신의 방대한 저서(10권짜리 전집)에서, “조선은 선진국이었다.”고 전제하면서 그 영향은 일본의 “근기지방(교토, 오사카, 나라 등지)에 물질문명 뿐 아니라, 정신적인 학문, 종교, 예술에 있어서까지 마찬가지로 앞선 선진국 문화를 안겨주었다”(『日本地理大系』⑦ 1919)고 찬양한 것을 필자는 지금의 이 니시진회관에 와서 새삼 가슴속에 차분하게 떠올려 보았다.
결코 역사와 기침소리는 누구도 숨길 수 없다고 했다. 고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신라인과 교토하면 ‘우스마사(太秦)’가 그 중심가이다. 따라서 우스마사라고 하는 그 지명인 땅이름도 잠간 풀고 넘어가는 것이 순서다.
이 고장 우스마사라는 행정 지명은 일찍이 21대 유랴쿠천황(雄略, 456~479) 때, 왕이 존중했던 야마시로(山城, 교토의 옛 지명) 터전의 신라인 지배자 하타노사케키미(秦酒君, 5C 후반)에게 우스마사라고 부르는 성을 새로이 내린 사성(賜姓)(『日本書紀』)이다.
교토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사학과 하야시야 다쓰사부로(林屋辰三郞) 교수도, “하타씨 가문은 그들이 거느리던 우스마사 터전에서 거대한 뽕밭을 일구었다. 그들은 비단을 잔뜩 짜서 산더미처럼 쌓았으며, 비단을 조정에 갖다 바침으로써 유라쿠천황의 환심을 크게 샀다고 한다. 즉 하타노사케키미는 180개 조직을 거느리고 우스마사에서 비단 제조를 이끌었던 큰 인물이었다.”(『京都』岩波書店, 1963)고 지적했다.
고대 신라인들의 일본 진출 과정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실 예를 든다면 그것은 각 지역의 신라인들의 옛 터전 지명들이다. 일본 각 지역의 지명에는 신라를 표방하는 지명이 자그마치 10여개가 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다음 같은 각 지역의 지명들을 필자가 장기간에 걸쳐 현지 답사하며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즉, 白木, 志良岐, 志樂, 信樂, 設樂, 白國, 白城, 白髮, 白石, 新露貴, 辛國, 新羅 등을 널리 들 수 있다.
물론 글자 그대로 그냥 일본어 발음으로서 ‘시라기’(新羅)라 부르기도 하며, 심지어 한국어 발음 그대로 신라(新羅, しんら)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어 크게 주목되어 온다.
![]() |
| 시라기진자(白木神社, 신라신사) |
일본 국문학자로서 가장 먼저 신라의 여러 가지 지명을 연구 지적한 대표적인 것은 오사카의 쇼인(樟蔭)여자대학 국문학과 이마이 케이이치(今井啓一) 교수였다.
이마이 케이이치 교수는 일본에서 ‘신라’를 한자어식으로 표기하는 우리의 이두식 ‘만요가나’(萬葉假名)의 여러 가지 표기를 다음처럼 한자로 제시하고 있다. “신라를 나타내는 말은 白木, 志良岐, 志樂, 信樂, 設樂, 白國, 등등. 이처럼 신라를 훈(訓·새김) 글자로 나타내고 있는 ‘신라훈’(新羅訓) 지역들은 신라계 사람들과 연고가 있는 터전들이다”(『歸化人と社寺』綜藝社, 1974)고 밝혔다.
그 밖에도 일본 각지의 신라에 대한 표기는 필자가 현지 답사 등을 통해 확인한 지명들이다.
현재 오사카시 나니와구의 기쓰가와쵸(浪速區木津川町2)에 있는 시라기진자(白木神社, 신라신사) 역시 본래 시라기에(新羅江, 신라강) 강가 키다와타나베무라(北渡辺村)에 있었다. 나오키 코지로(直木孝次郞) 교수는 “이 시라기신사도 고대 신라 이주민들의 후손 와타나베(渡辺) 가문이 신라신 신주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시라기신사 <유서략기(由緖略記)>에 신주는 스미요시대사(住吉大社)의 큰신(大神)의 어혼(御魂) 혼령이시다. 이 시라기신사는 스미요시대사의 말사(末社)이다”(앞 『大阪の新羅洲の南北渡辺村』)고 전한다는 것.
역시 시라기신사는 신라 바다신인 해신과 신라사 사찰로 유명한 스미요시대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지난 2010년 5월, 필자가 이 시라기신사 사당을 직접 찾아가 보니 자그마한 사당 경내에는 붉은 색 글자로 ‘白木神社’라는 표석들이 서있었고 궁사는 사당에 살고 있지 않았다.
임진왜란 직전의 고대 한국인들에게 대한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박해가 얼마나 컸던 것인가를 이 터전에서도 필자는 실감하면서 신라 신주님 앞에 머리를 깊이 숙여 재배했다. 마을 주민의 말로 궁사는 이 고장 마을의 "7월23일 여름 마쓰리 천신제사 행사 때만 오신다."고 했다. 그 시기에 한 번 다시 찾아가보련다.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