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경성을 배경으로 숨 가쁜 첩보전을 그리는 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묵직한 시대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제4회 방영분에서 항일 비밀 결사 ‘구국단’은 총독부의 2인자인 신임 정무총감 사토 신이치(진선규 분)를 겨냥해 정밀한 암살 작전을 펼쳤다. ‘조선 회화 전람회’ 참석이라는 이동 동선을 파악하고 매복했으나, 정작 그가 향한 곳은 문화 예술 행사장 대신 총독부 편집과의 한 밀실이었다. 그곳에서 사토 신이치가 챙긴 진짜 일정은 바로 관제 사서 편찬 작업, 즉 『조선사』 편찬의 진행 경과 보고였다.
극적 긴장감을 높인 이 장면은 단순한 픽션의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 1932년 당시 일제가 실제로 자행하던 가장 교활하고 집요했던 ‘역사 침탈’의 실체를 정면으로 비춘 까닭이다.

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4회의 한 장면
문화 통치라는 외피 뒤에 숨긴 ‘식민사학 공작’
〈100일의 거짓말〉의 배경인 1932년, 실제 조선총독부의 2인자 정무총감은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 체제 아래에서 재임(1931~1936)하던 관료 이마이다 기요노리(今井田 清徳)였다. 총독에 이어 행정·사법 전반을 지휘하던 정무총감의 공문서상 직책에는 눈에 띄는 자리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1925년 조선총독부 직속 관제 기구로 설치된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의 당연직 회장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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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정무총감 이마이다 기요노리 |
식민 통치의 실질적 사령관이 회화 전람회가 아닌 역사 편찬실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대의 구조적 현실을 빼닮아 있다. 일제는 총칼을 앞세운 무단통치에서 이른바 문화통치로 기조를 바꾼 뒤,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뿌리부터 와해시키기 위해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 대대적인 사료 수집과 편찬 사업에 착수했다. 35편에 달하는 『조선사』 편찬 작업은 학술 연구의 외피를 썼을 뿐, 그 본질은 단군신화,한사군한반도설,임나일본부설,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날조해 "조선은 본래 스스로 발전할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식민사관을 제도적으로 주입하려는 통치 공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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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1938년 6월 간행된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 표지 ②조선사편수회 위원장과 회장들로 모두 당시 정무총감이었다. 윗줄부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리오시 주이치, 시모오카 주지, 유아사 구라헤이, 이케가미 시로, 고다마 히데오, 이마이다 기요노리, 오노 로쿠이치로 ③조선사편수회 고문들. 윗줄부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완용, 박영효, 권중현, 핫토리 우노키치, 구로이타 가쓰미, 나이토 도라지로, 야마다 사부로, 이윤용, 하야미 히로시. 출처 : 독립기념관 |
왜 '총독부 2인자'가 직접 보고를 받는가
극 중 정무총감이 『조선사』 편찬 현황을 직접 챙기는 연출이 남다른 울림을 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역사 왜곡이 학자 몇몇의 일탈이나 단순 관변 출판 사업이 아니라, 총독부 최고위 수뇌부가 관장하는 핵심 국책 사업이었음을 직관적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 속 이마이다 기요노리 정무총감 역시 조선사편수회 회장과 친일 자문 기구인 중추원 의장을 겸임하며 사상 통제와 체제 순응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1930년대 초 대공황 여파로 들끓던 식민지 민중의 저항을 잠재우고자 농촌진흥운동(1932년 개시) 등 행정 통제를 가동하는 한편, 정신적 저항의 근거지인 ‘역사’를 관제로 뜯어고쳐 영구 지배의 발판을 놓으려 했던 시기였다. 우가키 총독 퇴임과 함께 정무총감에서 물러난 뒤 일본 제국 귀족원 칙선의원으로 영달을 누렸던 그의 궤적은, 식민지 지배 엘리트에게 '역사 편찬'이 얼마나 중대한 통치 실적이었는지를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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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100일의 거짓말’, 일제가 남긴 역사는 ‘100년의 거짓말’
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이 1932년 경성을 무대로 일제의 은밀한 역사 편찬 공작을 조명했다면, 현실에서는 그로부터 거의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조선총독부가 남긴 역사서 『조선사』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드라마가 그린 것이 ‘100일의 거짓말’이라면, 일제가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역사 인식의 문제는 가히 ‘100년의 거짓말’이라 할 만하다.
일제가 1925년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해 본격적으로 추진한 『조선사』 편찬 사업은 1938년 총 35권의 완간으로 이어졌다.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한 이 사업에는 이병도와 신석호 등 조선인 학자들도 참여했다. 일제는 방대한 사료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편찬 과정과 역사 해석에는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반영됐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렇다면 광복 이후 우리는 일제가 어떤 사료를 선택하고, 무엇을 누락했으며, 우리 역사를 어떤 관점으로 재구성했는지 충분히 밝혀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2015년 교육부는 약 25억 원의 국비를 투입하는 『조선사』 국역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학계 일각에서는 식민지 시기에 편찬된 역사서를 국가 예산으로 번역하는 사업에 반대했으나,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가 사업 수행 기관으로 선정돼 2016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진 측에 따르면 2022년까지 7년간의 작업을 통해 원본 35권을 국역한 46권의 번역본과 약 8만 쪽, 책 400권 분량에 해당하는 해제 자료를 제출했다.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일제가 인용한 사료의 원문을 대조하고, 식민주의적 역사 해석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최종 평가에서 연구 결과물은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연구진 측은 이로 인해 국역본 출판이 가로막혔으며, 연구비 환수와 국가 연구개발사업 참여 제한 등의 제재까지 받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번역,역주에 투입되었던 연구진은 1/N로 들었던 비용을 토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연구 결과물에 대한 평가와 행정처분의 적정성은 관련 규정과 법원의 판단에 따라 따져야 할 문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수년간의 국비를 투입해 마련한 번역과 해제 자료를 학계와 국민이 열람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는 여전히 남는 과제다.
일제가 편찬한 『조선사』의 역사 인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던 연구가 정작 그 성과를 공개하는 단계에서 논란에 휩싸였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조선사』에 담긴 식민주의적 역사 해석이 광복 이후 한국 역사학에 어떤 영향을 남겼으며, 그 영향이 어디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검증하는 일이다. 식민사학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서를 무조건 배척하거나 덮어 두는 것이 아니라, 원문과 번역문, 사료 대조 결과를 공개하고 학문적 토론을 통해 그 실체를 밝혀야 한다.
1932년 경성에서 총독부의 2인자가 직접 챙겼던 『조선사』 편찬 사업. 그로부터 90여 년이 흘렀지만, 일제가 남긴 역사 해석의 유산을 둘러싼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0일의 거짓말〉은 드라마이지만, ‘100년의 거짓말’이라는 문제 제기는 우리가 마주한 역사적 현실에 대한 질문이다.
드라마 속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권력에 맞서 싸웠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그들이 남긴 역사 왜곡의 실체를 자료와 증거로 밝혀내는 일이다.
100일의 거짓말은 드라마가 끝나면 막을 내린다. 그러나 100년의 거짓말을 끝내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토를 빼앗긴 민족이 마지막까지 지켜내려 했던 것은 자신들의 뿌리와 기억이었다. 적의 심장을 쏘기 위해 매복했던 독립군과, 밀실에서 조선의 역사를 재단하고 있던 총독부 정무총감의 엇갈린 동선은 묻는다. 칼로 지배하는 자보다 더 위험한 자는 누구인가. 1932년의 그들이 왜 목숨을 걸고 총을 들었는지, 그리고 왜 역사를 지키는 일이 곧 독립운동이었는지를 화면 너머 서늘하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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