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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칼럼] 한국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얼마 전 한 강연에 갔더니 한 분이 한국 민족주의를 국수주의라고 비난하는 이른바 일부 진보측의 시각에 대해서 질문했다. 나는 한국 민족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백범 김구, 단재 신채호, 도산 안창호’ 등의 예를 들어서 설명했더니 질문자 뿐 아니라 모든 청중들이 쉽게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비난을 듣고 무언가 석연치 않았는데 해소되었다는 그런 표정들이었다. 민족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경우는 ‘우리 민족’의 이름으로 다른 민족을 억압하거나 ‘민족’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때일 것이다. 이 세 분으로 대표되는 한국 민족주의에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다.
 
-일본 민족주의가 국수주의다.
『두산백과』를 찾아보면 ‘국수주의(國粹主義)’는 울트라내셔널리즘(ultranationalism)이라고 번역되어 있고, “극단적인 국가주의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며, 타민족·타국가에 대하여 배타적·초월적 성격을 지닌다.”고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인 실례로는 일본 제국주의와 이탈리아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을 들고 있다. 여기에 한국 민족주의가 낄 자리가 있나? 낄 시간이나 있었나? 고려 중·후기 유학이 득세한 이후 중국을 사대하고, 그 다음에는 친일 매국노들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해방 후에는 미국을 추종하기 바빴던 나라, 게다가 아직도 친일 세력들이 사회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한국 국수주의를 할 틈이 있었고, 할 시간이나 있었나?
 
-짝퉁 우파의 민족 부정론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짝퉁 좌파와 짝퉁 우파 양쪽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한국 민족주의에 대해 저주하는 것을 눈여겨 봐야한다. 짝퉁 우파라고 해야 할 뉴라이트의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민족주의는 본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라고 단정한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은 “민족이란 20세기 들어 구래의 조선인이 일제의 식민지 억압을 받으면서 발견한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라고 한민족 자체를 부정한다. 민족 자체가 20세기 들어 생겨났다는 희한한 주장이다.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아다녔던 유태인들은 허깨비였나? 그런데 뉴라이트류의 짝퉁 우파는 그나마 좀 낫다. 일제 강점기 때 한국 사회가 발전했다면서 일본 제국주의를 추종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굳이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시대가 좋았다고 순진하게 말하니까 구분하기가 좋다.
 
-짝퉁 좌파와 짝퉁 우파는 일란성 쌍둥이
짝퉁 좌파는 짝퉁 우파보다 교묘하다. 한때 진보를 표방했다가 지금은 조선총독부 앞잡이가 된 『역사비평』의 경우를 보자. 『역사비평』의 편집주간인 서울대국제대학원 교수 박태균이 기획했다는 「한국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이야 말로 한국의 사이비 짝퉁 좌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에 맞섰고, 지금도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는 한국 민족주의 역사관을 ‘사이비, 유사’ 등의 용어로 비난한다. 『조선일보』에서는 이들에게 ‘무서운 아이들’이란 닉네임을 붙여 띄워주었다. 21세기 백주대낮에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니 ‘무서운 아이들’인 것은 맞다. 이들은 『역사비평』에 발표한 글들을 주축으로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역사비평사)』이란 책을 냈다. ‘젊은역사학자모임’이란 명의다. 21세기 백주대낮의 대한민국에서 ‘낡고도 늙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전파하려니 내세울 것은 생물학적 나이밖에 없다는 자인이다. ‘젊은 역사학자모임’이란 급조된 명칭 우습지만 그들의 주장은 우습지 않다.
 
-한국 민족주의가 악?
이들 중 한 명인 가톨릭대 강사 장미애가 쓴 글을 보자. 장미애는 「민족의 국사 교과서, 그 안에 담긴 허상」이란 글에서 5차교육 과정의 국사과 교육목표에서 ‘민족’이 들어간 것에 대해 이렇게 비난하고 있다.
 
“여전히 “민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고 있어, 이 시기에도 민족적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중략). 정치적 민주화는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역사인식에서는 민족의 요소가 강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교과서 내용에서 ‘민족주의’적 요소가 강화되어가는 양상은 무엇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사이비역사학의 영향이다.”(장미애,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역사비평사, 2016, 74-75쪽)
 
놀랍게도 ‘한국 민족주의=악’이란 관점으로 글을 쓰고 있다. 뉴라이트류의 역사관은 물론 조선총독부 역사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지점이다. 현재 한국 민족주의를 비난하는 이 땅의 짝퉁 좌파나 짝퉁 우파는 모두 조선총독부를 모태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들이다. 다만 짝퉁 우파는 가면을 안 썼고, 짝퉁 좌파는 ‘진보’라는 가면을 쓰고 접근하기 때문에 알아보기 쉽지 않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서양 민족주의와 일본 민족주의
서양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중세 코스모폴리탄 사회에서 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민족국가가 탄생했다. 서구의 민족국가는 곧 제국주의화가 되므로 서구 민족주의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이른바 메이지〔明治〕 유신 이래 서구 민족국가가 걸었던 ‘못된 길’을 걸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민족을 ‘1등·2등·3등민족’ 등으로 분류해 차별했다. 한국 민족주의는 이런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저항의 민족주의다. 그래서 단재 신채호는 의열단선언문인 「조선혁명선언」 첫머리에서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하고 우리의 정권을 빼앗고……”라고 비판하고,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라고 선언했다. 단재에게는 ‘한국 민족=민중’이 일치했다. 모두 억압받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는 「나의 소원」에서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라고 갈파했다.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과 김구의 「나의 소원」이 한국 민족주의의 기본 이념을 담고 있는 글이다. 민족 단위의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 싸웠고, 민족 내에서는 절대적인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 것이 한국 민족주의이다.
 
-뭐 저런 ×들이 있느냐?
초청 강연한 인연으로 알게 된 목사님이 전화를 주셨다. 한국사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저쪽, 즉 식민사학 쪽의 시각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물학적 나이는 젊은 ‘무서운 아이들’의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을 추천해 드렸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책을 봤는데 뭐 저런 ×들이 있느냐”고 대뜸 역정 내신다. 조금만 상식적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면 진실은 쉽게 보인다.

현대사박물관 학예실장에 사실상 독도공유론을 주장하는 학자가 내정되었다고 여러 곳에서 비판이 높다. 국민청원도 한단다. 독도공유론자의 공직 진출을 막기 위해 국민청원까지 해야 한다면 촛불로 탄생했다는 이 정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국정 운영을 하는 것일까?
 
-위안부 할머니들도 문제다?
이 사태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와 내 주변은 전혀 놀라지 않는다. 짝퉁 우파는 물론 짝퉁 좌파들이 민족을 부정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노자는 「한겨레 21」에 연재한 내용을 묶은 『거꾸로 보는 고대사』에서,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에 대해 “1929년에 「단군고(檀君考)」라는 논문을 발표한 경성제국대학 겸임교수 이마니시 류와 같은 ‘과학적 근대 사학자’(한겨레출판, 2010)”라고 극찬했다. 이마니시 류의 「단군고」는 단군이 12세기부터 13세기에 창작되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니 조선총독부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박노자의 눈에 ‘과학적 근대사학자’로 보이는 것이다. 박노자의 『거꾸로 보는 고대사』는 『조선총독부의 눈으로 본 고대사』라고 하면 역시 명실이 상부한다고 내가 이미 썼다.

박노자가 『한겨레 21』 인터뷰에서 훌륭한 학자로 칭송한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척하면서 “피해자와 그 자손이 화해의 길로 나아가길 꺼려하는 것은 도덕적,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중앙일보』 2017.5.24.)”이라고 위안부 할머니들도 비난했다. 오늘 세상을 떠날지 내일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그 가족들이 ‘도덕적·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누구 편에서 이 문제를 보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위안부들과 일본군이 ‘동지’였다는 박유하는 노골적으로 독도를 한일이 공동으로 영유하자고 주장한다. 물론 대마도를 공동으로 영유하자는 말은 일체 없다. 임종국 선생은 『실록 친일파』 서문에서 “‘민족’과 ‘국가’와 ‘철학’을 몽땅 거세할 때 문학에서 무엇이 남는가?”라고 일갈했다. 그 임종국 선생의 뜻을 이어받는다는 학자들 여러 명이 박유하 지지 선언을 했다. 이 나라 돌아가는 꼴이 구한말 비슷해진다. 믿을 것은 지난 겨울 촛불을 들었던 민중들의 순수한 마음과 순수한 분노 밖에 없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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