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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불암 선생님 |
대한민국 방송문화의 한 시대를 이끌어 온 국민배우 최불암 선생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29일 밤 10시께 세상을 떠났다. 1959년 연극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67년 동안 연극과 영화 그리고 방송을 넘나들며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거목이 역사의 뒤안길로 떠났다.
최불암은 단순히 인기 있는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변화 속에서 국민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경찰이었고 농촌 공동체를 지키는 든든한 아버지였으며 마지막에는 우리 민족의 음식과 삶의 문화를 전하는 따뜻한 길잡이였다.
1971년 시작된 MBC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박영한 반장으로 활약하며 정의와 인간미를 겸비한 경찰상을 보여주었다. 이어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송된 '전원일기'에서는 양촌리 김 회장으로 출연해 한국 농촌사회의 가족애와 이웃 간의 정을 국민의 가슴에 깊이 새겼다.
그의 연기는 단순한 배역을 넘어 한국인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되었고 시대를 관통하는 국민적 정서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고인의 생애 후반을 빛낸 프로그램은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이었다.
2011년부터 2025년까지 14년간 전국의 산과 들 그리고 바다와 섬마을을 찾아다니며 우리 민족의 음식에 담긴 역사와 문화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전했다.
그가 소개한 밥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손맛이었고 고향의 기억이었으며 세대를 이어 내려온 생활문화의 유산이었다.
산골 마을의 소박한 나물 한 접시와 어촌의 투박한 생선 한 그릇에도 저마다의 사연과 역사가 있었다. 최불암은 특유의 중후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로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인생을 들려주었다.
특히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라져 가는 지역의 음식문화와 공동체의 기억을 기록하고 전승했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밥상'이 갖는 문화사적 의미는 남다르다.
그는 배우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의 삶을 기록한 문화 전달자였고 우리의 전통과 정서를 다음 세대에 이어주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과도 같은 존재였다.
기자에게도 최불암 선생과의 소중한 인연이 있다.
2007년 3월 29일 서울시 홍보대사 위촉 현장에서 처음 선생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랜 세월 국민에게 친근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왔던 배우를 직접 마주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로부터 19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선생의 별세 소식을 접하며 당시의 만남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방송을 통해 수많은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와 정을 전했던 한 배우의 삶이 얼마나 큰 문화적 유산으로 남았는지 새삼 되새기게 된다.
고인은 2025년 허리디스크 수술 이후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했다. 이후 재활치료에 힘써왔으나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의 뒤를 이어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한 배우 최수종도 고인을 추모하며 평생 이웃들의 땀방울과 밥상 위의 삶을 존중했던 선생의 정신을 기렸다.
최불암은 연기 활동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사회공헌에도 힘썼다. 고인의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한 시대의 국민배우가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산은 드라마 속 명장면이나 수많은 방송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인의 삶을 사랑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그의 따뜻한 시선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수사반장'의 정의로운 박 반장과 '전원일기'의 든든한 김 회장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에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를 전했던 최불암.
그는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영원한 국민배우이자 대한민국 문화사의 큰 별이었다.
큰 별은 졌지만 그가 전해준 한국인의 정과 문화 그리고 사람을 향한 따뜻한 사랑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유산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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