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자 수첩
[칼럼] 세련된 애니메이션 뒤에 숨은 ‘반도사관’의 망령유튜브 영상 《The Rise of the Korean Three Kingdoms, Mapped》를 보고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는 역사를 전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잘 정돈된 그래픽과 감각적인 애니메이션, 유창한 영어 내레이션은 세계인에게 특정 국가의 정체성과 과거를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유튜브 채널 ‘Min Maps Asia’가 제작한 삼국시대 영토 변화 영상 역시 겉보기에는 방대한 사료를 공들여 시각화한 수준 높은 역사 콘텐츠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매끄러운 2차원 지도 위에 투영된 역사관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민족의 자주적 뿌리와 웅대한 기상을 송두리째 난도질한 식민사관의 낡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찍이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 설파하며 민족의 주체적 자각을 강조했다. 또한 《환단고기》를 비롯한 민족사학의 거대한 맥락은 우리 민족의 시원이 한반도라는 작은 새장에 갇힌 패배자가 아니라 동북아 대륙 전역을 호령하던 천손(天孫)의 제국이었음을 증언한다. 그러나 이 영상은 한국사 서술의 첫 단추부터 외세의 식민 지배로 꿰며 굴종의 서사를 세계를 향해 당당히 퍼뜨리고 있다.

가장 치명적인 왜곡은 고조선의 멸망과 한사군(漢四郡)의 한반도 내정 비정이다. 영상은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하고 대동강 유역을 비롯한 한반도 북부에 사군을 설치해 ‘400년간 직접 지배’했다고 태연하게 선언한다. 이는 일제 어용학자들이 한국사를 외세의 침략과 지배로 시작된 종속적 역사로 조작하기 위해 날조한 ‘타율성론’과 ‘낙랑군 재평양설’의 노골적인 답습이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비롯한 민족사학계가 누차 증명했듯, 낙랑군을 포함한 한사군은 난하 서쪽과 요서 지역의 국경 분쟁 지역에 잠시 설치되었던 외곽 군현에 불과했다. 우리 민족의 심장부가 400년 동안 중국의 식민지였다는 거짓된 지도를 세계인에게 보여주는 행위가 왜곡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영상 속 고구려는 척박한 산골짜기에 갇혀 만성적 식량 부족에 시달리다 주변을 약탈하고, 선비족 전연(前燕)과 위나라 관구검의 침략에 수도가 짓밟히고 왕의 시신과 모후가 끌려가는 ‘굴욕과 취약성의 표본’으로 묘사된다. 환국과 배달국, 단군조선의 대륙 통치 역사를 계승하고, 동방의 패자로서 중원의 패권에 맞섰던 고구려의 자주적 천하관과 웅혼한 기상은 철저히 지워졌다. 오직 중국 중심의 사서(史書)에 기록된 편협한 시각을 그대로 베껴 만주 대륙을 주름잡던 제국의 면모를 일개 산악 부족의 몸부림으로 격하시켜 놓았다.

백제와 신라의 강역을 한반도 중남부의 좁은 구석으로 한정 지은 소위 ‘반도사관’의 한계 역시 참담하다. 백제가 황해를 건너 중국 대륙의 요서와 산둥, 양쯔강 하구에 이르는 방대한 연안을 장악하고 통치했다는 ‘대륙백제’의 기록(《송서》, 《양서》 등)은 지도에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만주 대륙에 존재했던 원래의 삼한(단군조선의 진한·번한·마한)이 남하해 정착했다는 역사적 맥락은 거세되고, 마한·진한·변한은 그저 한반도 남단에 웅크린 미개한 소국 연맹체로 전락했다. 심지어 백제가 왜의 야마토 조정에 하사한 최고 권위의 상징인 칠지도(七支刀)조차 군사 원조를 애걸하기 위해 바친 외교적 선물로 둔갑시키며 일제 식민사학의 망령인 임나일본부설의 잔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조상의 얼과 웅대한 무대를 스스로 축소하고, 외세의 지배를 역사의 정설인 양 포장하여 세계화하는 행태는 학문적 엄밀함이 아닌 지적 사대주의의 극치다. 조국의 역사를 좁은 한반도라는 감옥에 가두고 스스로를 영원한 반도의 약소국으로 규정하는 한, 세계를 향한 진정한 문화적 자긍심은 성립할 수 없다. 화려한 지도와 영문 해설 뒤에 도사린 이 굴종적 사관을 직시하고 걷어내야 할 때다. 민족의 시원과 웅대한 강역을 되찾는 일은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 속에 당당히 서기 위한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다.

《The Rise of the Korean Three Kingdoms, Mapped》
https://youtu.be/80CoPgOPVt8?si=bsZpabBjbX02v4YN

《The Rise of the Korean Three Kingdoms, Mapped》의 한 장면. 마치 한반도의 반이 한나라의 영토가 된 것처럼 그려놓았다.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찬화 전문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