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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부모가 주고, 호는 삶이 만든다함양 개평한옥마을에서 돌아본 이름의 무게와 조선 선비의 인생철학
이름은 부모가 주고, 호는 삶이 만든다

이름은 자신보다 남이 더 자주 부른다. 부모가 정성껏 지어 준 이름은 그렇게 다른 사람의 입을 거쳐 세상에 자리 잡는다. 그러나 그 이름을 어떤 의미로 남길 것인지는 결국 이름의 주인에게 달려 있다. 같은 이름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믿음으로,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으로 기억되는 까닭이다.

가락대전종친회 김종성 회장과 30여 명의 종친이 함께한 함양 개평한옥마을 탐방은 이름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산청 덕양전의 제향을 마치고 함양의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개평한옥마을로 이어진 여정에서 일행은 선조들의 삶과 마주했다. 정여창과 김일손의 자취를 살펴보고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다 보니 한 가지 물음이 떠올랐다. 옛사람들은 왜 이름 외에도 자와 호를 쓰고, 세상을 떠난 뒤에는 또 다른 이름으로 기억되었을까?

전통사회에서 사람을 부르는 말에는 관계와 예절이 담겨 있었다. 집안 어른이 지어 주는 이름에 자손을 향한 기대가 깃들었다면, 성인이 된 뒤 받는 자(字)에는 한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뜻이 담겼다. 남성의 성년 의례인 관례(冠禮)는 그 전환을 알리는 자리였다. 관례를 치르고 자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어른이 되었음을 뜻했다.

호(號)에는 조금 다른 결이 있다. 스스로 짓거나 스승과 벗이 지어 주기도 했던 호에는 학문에 대한 뜻, 좋아하는 자연, 머무는 공간, 살아가고 싶은 삶의 모습이 담겼다. 이름이 가족에게서 받은 것이라면, 호는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며 얻은 또 하나의 이름이었다.

물론 모든 호가 거창한 신념을 담은 것은 아니다. 소박한 거처나 일상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말로 자신을 불렀는지 살펴보면 그 사람이 가까이하고 싶었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호는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은 창이다.

 

함양 정여창의 호, 일두(一蠹)

개평마을에서 특히 오래 생각하게 되는 이름은 정여창의 호, 일두(一蠹)다. ‘한 마리의 좀벌레’라는 뜻이다. 후대에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은 학자가 자신을 이토록 작은 존재에 빗댔다는 사실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정여창의 호가 자신을 낮추는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면, 추사 김정희의 여러 호는 한 사람이 품은 다채로운 세계를 보여 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추사(秋史)와 완당(阮堂) 외에도 그는 다양한 호와 별호를 사용했다. 학문과 예술, 교유와 일상의 폭이 넓었던 만큼 자신을 표현하는 이름도 다채로웠다.

김정희의 여러 호를 보면 한 사람의 삶을 하나의 이름으로 다 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여러 모습이 있고, 평생에 걸쳐 가꾸어 가는 관심과 뜻도 하나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호가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뜻과 취향을 담은 이름이라면, 시호(諡號)는 사후에 국가가 생전의 행적과 공적을 평가해 내린 이름이다. 이순신의 충무(忠武), 정여창의 문헌(文獻)에는 당시 사회가 중시한 충성과 무공, 학문과 덕행의 가치가 담겨 있다.

자와 호, 시호는 쓰임이 서로 다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존중하고 삶의 뜻을 새기며 그 행적을 기억하려는 마음이 흐른다. 그 전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질문을 건넨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며,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이름이 한 사람의 삶을 담는다면, 성씨는 그 사람을 선조와 후손의 역사에 연결한다. 가락의 후손들에게 이번 여행은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며 오늘의 삶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함양 한옥마을을 찾은 가락대전종친회 가족들

추향대제에서 김종성 회장은 아헌관으로, 대전 종친 11명은 전사관으로, 나머지 종친들은 행사 봉사자로서 각자의 소임을 다했다. 이어진 함양 탐방은 가락대전종친회 종친 모두에게 선조를 향한 공경을 배움과 성찰로 넓히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선비들의 삶이 깃든 옛집과 유적을 돌아보며 이름과 자(字), 호(號), 시호(諡號)에 담긴 깊은 의미를 배우고 되새겼다. 그 안에 담긴 한 사람을 향한 기대와 스스로 지키고자 한 뜻, 후대의 기억과 평가를 살피며 선조의 정신을 오늘의 삶에서 어떻게 이어 갈 것인지 생각했다.

이름은 부모에게서 받지만, 그 이름에 담길 삶은 자신의 선택과 실천으로 만들어 간다. 이번 여정은 종친 모두가 성실함과 배려로 하루하루를 채우며,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이름과 삶을 남기겠다는 다짐을 나누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차보람 기자  carbor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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