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신라인들의 누에치기 명소가 있는 ‘카이코노야시로(蠶ノ社)’
신라인들의 비단 산업문화가 눈부신 우스마사 터전에는 오늘에도 유명한 고대 신라인들의 누에치기 명소라는 그 뚜렷한 발자취가 ‘누에사당’인 ‘카이코노야시로(蠶ノ社)’다. 그러기에 교토 시가지 서쪽(西京) 우스마사 거리를 달리는 소형 단칸 협궤 전찻길의 정류소 ‘카이코노야시로’에서 전차를 내려 앞쪽 골목으로 건너가면 그 곳에서 북쪽으로 가까운 곳에 누에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단군왕검께서 하백의 따님을 맞이하여 왕후로 삼고 누에치기를 맡게 하셨거니와 고대신라 도래인 하타씨(秦氏) 가문도 누에사당을 세우고 한민족의 누에신 신주(神主)를 모셨다고 하는 발자취가 교토 땅에 연면하게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여하 간에 한민족의 고대 사회에서 비단의 존귀성이 얼마나 높게 존숭되었던 것인가를 오늘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일본왕실의 “아키히토천황과 황후가 해마다 4~5월에는 손수 왕궁 내부의 생물학연구소논(生物學硏究所水田)이며 그 곳 누에치기 양잠소(御養蠶所)에서 모내기와 누에치기 행사를 해오고 있다”(『平成の皇室事典』1995). 이런 것 역시 한민족의 오랜 역사의 발자취를 모방한 것이 아니가 한다.
蘇塗 천신 제사 후 축제를 모방한 일왕실의 가무 축제
구메 구니다케 교수는 일본왕실에서 천황이 몸소 모시는 가장 중요한 최고의 신상제(해마다 11월23일 천황궁 신전에서 거행함) 천신 제사의 뿌리가 고조선에 있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밝혔다.
즉 “신상제는 동양의 고속(古俗)이며 조선땅(韓土)에서 마찬가지로서 고구려는 10월에 제천 국중대회(祭天國中大會)라는 東盟을 지냈다. 이 東盟은 東明으로서 豊明節會(豊年祭祀의 歌舞祝祭)이다.
예(濊)의 제천은 늘 10월에 하늘에 제사올리고 음주 가무했는데, 그것을 무왕(舞王)이라 불렀다.
마한은 항상 5월에 귀신에게 전경제(田竟祭)를 지내며 주야로 무리지어 가무했다. 10월에는 농사를 마쳐 수십 명이 무리지어 땅을 밟으며 제사 올렸는데, 그와 같이 여름 겨울 두 철에 큰 제사를 지냈다.
부여(夫餘)는 12월에 제천 대회를 열어 음식을 먹으며 가무했는데 그것을 일컬어 迎鼓라 했다”고 소상하게 지적했다.
우리민족이 각기 蘇塗에서 천신 제사를 모시고 나면 왕과 산하들 모두는 떡과 술을 나눠 먹고 마시며 가무했던 한민족 祭政一致 국가 체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일본왕실로 계승된 것을 지적했다. 지금까지도 일본왕실에서는 신상제 제사 후에는 음주 가무를 즐기고 있으며, 천황궁 雅樂堂의 악인(樂人)들이 演奏와 歌舞를 담당하고 있다. 雅樂堂의 아베 스에마사(安倍季昌) 악장은 “왕실 가무에 쓰이는 악기들은 고구려 등 고대 한국악기(右方樂)와 당나라 악기(左方樂)이다”
『桓檀古記』(三神五帝本紀)에 보면 구메 구니다케 교수가 그의 연구론에서 진솔하게 지적한 대로 三韓의 고유한 풍속(國風)인 蘇塗祭天으로서의 “三韓의 古俗은 十月 上日에 蘇塗의 國中大會를 성대하게 거행했다”고 하는『桓檀古記』의 기사와 똑같은 고속이 일본에서도 한민족 국풍을 따라 하늘에 제사 드린 다음 떡과 술을 나눠 마시며 가무하는 豊明節會를 거행했다”(앞「神道は祭天の古俗」)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구메 구니다케 교수가 어쩌면 천황궁 서고에 보관된『桓檀古記』를 읽고 그의 위와 같은 연구론을 펼친 것을 거듭 상기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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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韓神)] 축문의 유래 규명한 西角井正慶 교수(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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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久米邦武「神道は祭天の古俗」신도는 제천의 고속)『史海』(1892년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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