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 이후부터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였다. 의장 이동녕,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등 많은 독립투사들이 임시 의정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임시정부는 수립 직후부터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임시헌법 등의 법규를 제정하고 내정, 군사, 외교, 재정, 교육 홍보 등 각 방면의 정책 수립을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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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http://100.naver.com/100.nhn?docid=45970] |
이후 임시정부의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결을 결행하는 등의 임시정부의 활동으로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상해 임시정부를 항저우, 난징 등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후1940년에는 충칭(重慶)에 터를 잡게 된다. 결국 임시정부는 1945년 8.15 광복까지 상해에서부터 충칭(重慶, 중경)까지 청사를 옮겨가며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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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충칭 청사에서 광복을 기뻐하며 조국으로 돌아가기 20일 전 찍은 기념사진. |
충칭(重慶, 중경) 임시정부 청사 현재 남아있는 청사 중 가장 규모가 크다. 1990년대 충칭 도시 재개발 계획으로 건물이 헐릴 위기에 놓였다가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가 함께 복원을 결정해 1995년 기념관으로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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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 일행은 충칭 임시정부 청사 앞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 사진은 광복 후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조국으로 돌아가기 전 찍은 사진과 유사한 구도로 촬영되었다 (청와대 페이스북) |
박지환 기자 youcontent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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