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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하나는 생명이다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철학을 지배해온 키워드는 무엇일까? 아마도 서구사상은 그리스에서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이상적인 단어가 ‘로고스(Logos)’였을 것이다.

동양인들의 영원한 화두도 있다. 고대 사상을 풍미했던 제자백가에서 유불선에 이르기까지 가장 즐겨 논했던 진리의 잣대는 ‘도(道)’였을 것이다. 로고스와 도는 동서양 철학이 염원했던 이상향이다.

그리스사상에서 로고스는 존재원리이며 만물의 통일 원리였다. 신의 계시 내지 신(神) 자체로 보았던 경우도 있다. 로고스는 파토스(Pathos)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그리스어의 어원은 ‘말하다’이다. 진리, 이성, 논리, 법칙 등의 다양한 뜻으로 파생되었다.

헤라클레토스는 만물은 ‘하나’의 로고스에 의해 지배되며 이 로고스를 인식하는 것이 지혜로 보았다. 특히 프로티노스는 근원이 되는 일자(一者)는 로고스를 초월한다고도 했다. 이처럼 서양철학의 키워드도 만물의 근원을 ‘하나’ 또는 ‘일자’로 집약하고 있다.
 
동양의 ‘도(道)’는 유불선 3교를 통해 실현하고자 한 목표였고 진리를 깨달은 이상적인 경지다. 도(道)는 진리를 찾아가는 길이요, 득도한 사람은 생불(生佛)이 되거나 신선이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동양적 의미의 ‘도’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능동적인 창조주로 인식되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는 만물을 낳고 가꾸면서도 자기 것으로 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스스로 주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위자연이 도의 속성이라 규정했다. 또한 창조의 질서를 도에서 찾고 있다.

즉, 도는 하나를 낳고(道生一)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三生萬物)고 했다. 태초에 하나를 얻음으로서 하늘은 청명하고 땅도 삼라만상을 다 싣고도 하나를 얻어 편안하다. 천지만물도 하나를 얻음으로서 제 몫을 다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하나’는 곧 생명이다.
 
석가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을 주장했고 공자도 오도관일(吾道貫一)을 역설했다. 결국 도는 천지만물이 존재하게 하는 절대적 존재로 보았다. 결국 노자나 공자, 석가도 ‘하나’를 생명의 원천으로 여겼다.

인간도 궁극적으로 평안하고 자유로움을 얻으려면 ‘하나’를 얻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종교들이 하나를 인격화하여 ‘님’자를 붙임으로서 ‘하나님’ 또는 ‘하느님’이 되었다.

유학도 만물생성의 출발점을 태극에 두었다. 또한 태극(太極)은 원래 무극(無極)이다. 즉, 태극론은 태극이며 무극이란 궁극점에서 만물이 생성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태극이 무극이라 함은 같은 ‘하나’인데 이름이 다를 뿐이다. 태극이 움직여 양(陽)을 낳고 고요해지면 곧 음(陰)이다.

또한 고요해지는 음이 차면 다시 움직이게 되어 양이 된다. 이처럼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해저서 태극기 중앙의 태극과 같은 아래위의 양의(兩儀)가 생기게 된다. 또한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오행(火水木金土)이 생기니 만물이 이에 조감하여 생성한다고 보았다.

로고스(Logos)나 도(道)는 인간이 지향했던 이상향이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인 진리요, 덕으로 생각되었다. 또한 공통적인 속성은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동서양 철학의 가장 근원적인 창조원리와 모든 사람들이 염원했던 진리의 잣대였던 ‘하나’사상은 생명의 원천으로 심오한 이치를 함께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서양 철학이 우리문화인 ‘한’사상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한’은 보편적 진리이다. 수 천 년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 이상적인 지향점이고 민초들이 실천한 삶의 지혜였다. 하나는 곧 생명이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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