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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19)

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나의 입만이 입이다 - 자꾸 원위치! 

도착할 곳이 비어 있을 때, 이 ‘없는’ 곳에 다른 것이 자리할 수 ‘있게’ 된다. 만남의 외적 수단들은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만 내 생각으로만 꽉 차있다면, 새로운 생각, 다른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고정관념, 선입견, 신념, 아집, 절대가치, 경직된 사고가 나의 마음을 비우지 못하게 한다.

이들이 생기는 원인들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선은 제도와 관습, 전통과 문화를 아우르는 세상크기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세상크기 속에 무의식적으로 젖어 살면서 길-들어져 이것이 하나의 습(習)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의 빈자리는 같음을 상대화하고 다름을 쳐다보고 만나보며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빈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다른 생각들을 주의할 수도, 들을 수도, 들일 수도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생각이나 가치를 따르라는 강제성의 메시지만 일방적으로 내보면서 상대의 생각이나 가치를 점령하려 한다.

메시지가 자신으로부터 상대의 자리로 흘러가 자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찬 마음자리의 크기만큼 상대의 마음자리도 비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메시지는 움직였지만 제자리다. 만남이되 만남이 아니다. 나는 내 말만 하려 하고, 상대는 나의 말은 어떤 말이든 안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내 말만 하려 하니 안 들으려는 것인지, 안 들으려 하니 내 말만 하려는 것인지... 아니, 안 듣는다기보다 못 듣는 것 같다.

하나의 바퀴가 땅과 만나지 못하거나 미끄러워 만나나마나일 때, 바퀴는 움직임 속에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같은 길, 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만나고 떠나는 제자리돌기다. 미끄러짐 속에 같은 궤도를 반복하면서, 같은 자리, 같은 공간에서의 ‘움직이는 머묾’ 속에 거리의 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제자리돌기, 제자리걸음은 하나의 특수한 움직임이다. 자리의 이동이 있지만, 동시에 자리의 이동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길이 아닌, 같은 길을 반복하여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로 원위치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다름을 만나지 못한다.

제자리를 맴도는 소통에서 한 쪽이 메시지를 보냈지만, 메시지는 허공으로 증발한다. 보냈지만, 제자리에 머문 셈이다. 일종의 일방소통이다. 아니, 도착하지도 못했으므로 일방소통도 못된다.

부당한 명령이나 일방적인 통보 속에 메시지를 내보내지만, 메시지는 떠나지 않는다. 도착하여 접수되지 않으니까... 혹은 ‘정당한’ 방식과 내용으로 떠나보내지만, 들을 줄을 몰라, 들일 줄을 몰라 메시지는 바깥에서 맴돌다 증발한다. 이때의 메시지는 소박맞은 출가외인의 처지랄까? 친정도 시댁도 자신의 자리가 아니니... 아니, 아니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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