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K-history
오늘은 독립운동가 임치정 선생(1880.9.26~1932.1.9)의 서거일

신민회와 공립협회에서 활동하며 항일투쟁하다.

 

 “춘곡(春谷)은 의리와 우정과 불평의 사람이었소. 그가 한 번 허락한 동지에 대한 의리는 일즉 변해보는 일이 없었소. 또 춘곡은 친구에 대하여는 항상 춘풍과 같은 우정을 가졌고 빈궁한 동지의 가족은 자기 가족과 같이 여겨서 의식을 같이하였소. 항상 불평이 있어 술로 잊으려 하였소”
                
-1932년 선생에 대한 지인의 추모글 중-

 

선생의 호는 춘곡(春谷)이다. 평안남도 용강 출신으로 이조판서 임국로(林國老)의 아들이다.

선생은 190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교포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조직하며 기관지인 『공립신보(共立新報)』를 간행하였다. 하와이 교포들이 1903년에 조직한 신민회(新民會)에서도 가입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07년 겨울에 귀국하여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서 회계사무를 맡아 보았다. 그리고 그해 1907년에 조직된 비밀결사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일제가 애국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모살미수사건’즉,‘양기탁 등 보안법위반사건’과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1911년 일본 경찰에 잡히게 되었다.

주모자 6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가혹한 고문 끝에  1912년 9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윤치호(尹致昊)·양기탁(梁起鐸)·이승훈(李昇薰)·안태국(安泰國)·유동열(柳東說) 등과 함께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다음 해 7월 경성복심법원에서의 2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14년 특사로 석방되었다.

1919년에는 기독교계 인사들과 준비하여 3월 1일 시위를 일으키는 데 앞장서게 된다.이후 1923년 민족교육기관의 설립을 목표로 결성된 민립대학기성회의 감사위원 중 한 사람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과 그 뜻을 기리기 위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자료 출처 : 정상규의 독립운동가 앱, 다음 인물백과사전 -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하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