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반재원의 『단군을 만나다 2부』 - ⑦맹자와 논어의 연원

지난  반재원의  『단군을 만나다 』 10편에  이어 『단군을 만나다 2부』  단군은 고전의 광맥  10편을 연재코자 합니다.  /편집자 주/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

 

 

 

 

 

 

 

17세 여을단군 10년 무인년(서기전 1543년)에 고수노가 대답하기를

“젖먹이는 젖이 아니면 키울 수 없고 어른은 밥이 아니면 배부르지 않으며 노인은 고기가 아니면 영양이 부족하고 병자는 약이 아니면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정도에 합당한 정치를 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낮은 백성은 먹고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항상 먹고 입는 것을 풍족하게 한 후에 예의를 가르쳐야 하며 법도로써 이끄는 것이 바로 백성을 위한 정치입니다. 만일 백성이 늘 할 수 있는 생업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어지고 항심恒心이 없으면 사기와 도적질을 하게 됩니다.”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고 추워도 입을 옷이 없으면 아무리 자비로운 아버지일지라도 자식을 기를 수 없는데 군주가 어떻게 백성을 다스리겠습니까. 옛 글에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옷과 먹을 것이 풍족해야 영광과 욕됨을 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은 전반적으로 사서四書의 내용과 같다.

“노인은 고기가 아니면 영양이 부족하고”라는 내용은 “나이50에 비단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아니하고 70에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라는 『맹자』 진심장구 상의 내용이며

 “항상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하게 한 연후에 예의를 가르치며, 생업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어지고,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야 예를 안다.”라는 내용 역시 “항산恒産이 없으면서도 항심恒心을 지닐 수 있는 자는 선비라야 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맹자』 양혜왕장구 상의 내용과 같음을 알 수 있다.

  또 3세 가륵단군 첫해 기해년(서기전2182년)에 삼랑 을보륵이 아뢰기를

“도道는 아비 된 자는 아비 할 바를 하고, 임금 된 자는 임금 할 바를 하고, 스승 된 자는 스승 할 바를 하고, 자식 된 이는 자식 할 바를 하고, 제자 된 이는 제자 할 바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시 개천의 도 역시 신의 가르침을 베푸는 것으로써, 나를 알고 내 마음을 비워 공空을 구하면 만물은 능히 인간 세상에 복이 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논어』 안연편에 제경공이 공자한테 정치를 물은데 대하여 공자가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이미 공자(서기전479년)보다 1500년 전의 기록이다.

  또 35세 사벌단군 5년 계유년(서기전 768년)에 단군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탄식하여 가로되

“옛 말에 이르기를 새가 죽을 때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음에 임박하면 그 말이 착하다.” 하더니 이제 한문거의 말이 착하고 아름답구나. 사람을 보내어 문병하니 그 날에 죽으니 국장을 치르고 비석을 세워 적었다.

이 말은 맹경자가 증자를 병문안 갔을 때 증자가 “새가 장차 죽으려함에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함에 그 말이 착하다.(鳥之將死 其鳴也 哀, 人之將死 其言也 善)”라고 한 『논어』 태백편의 연원이다.

  증자는 한문거와 35세 사벌단군 보다 320년 뒤에 사람이다. 그런데 사벌 단군도 이 말을 옛 말에 있었다고 했으니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내려온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