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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23)

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위의 입만이 입이다 - 반만 나-서라!  

손녀의 노란 머리를 보시고 할아버지는 ‘너는 머리가 그게 뭐냐?’고 하고, 구멍 낸 바지를 보시고 ‘너는 바지 꼴이 그게 뭐냐?’고 하신다. 이후 손녀는 할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눈치를 보면서 슬슬 피한다. 행동반경이나 경험, 사고의 방향이나 방법에서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 건너기 어려운 강이 있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걱정 되어, 싫어하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손녀의 패션에 끼어드신다. 할아버지는 끼어들면서 ‘더 좋은 거다!’, ‘나와 같아져라!’, ‘너를 위한 거다!’라고 말씀하신다. 나와 남 사이의 ‘잘못 나뉨’에 위아래의 힘 나뉨이 더해진 논리라 할 것이다.

옥스포드의 철학자 오스틴(Austin, 1911~1960)에 의하면, 이 말씀은 하나의 행동이다. 손녀는 도망간다. 손녀에게 자신의 패션은 할 수도 있고, 해야 하기도 한 패션이다. 하지 않으면, 친구나 시대와 함께하기가 어렵고, 함께 못할 때, 학교생활이나 결혼, 취직 등에 큰 장애가 발생한다.

‘할아버지와의 함께’와 ‘시대와의 함께’가 함께 아닌 따로이다. 함께하여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드릴 수도 없고, 할아버지가 학교에 와서 체험학습이라도 하시라고 할 수도 없으니 난감하다. 난감해진 손녀는 피함이 상책이다.

아랫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윗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도 사실과 무관하거나 앞뒤로 꽉 막혀있을 때도 많다. 그런데도 서로가 상대의 말을 막고 끊으면서, 자신의 말만 트고 이으려는 일은 나는 말해도 너는 말하지 말라는 뜻이고, 나는 말할 테니까 너는 들으라는 뜻이다. 나 중심으로 하는 말이지만, 윗사람이기에 실력행사가 가능하다. 나 중심주의와 위 중심주의가 만났다 할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떤 근거를 그럴 듯하게 내세우든, 한 쪽의 입은 ‘말하는 입’이지만, 한 쪽의 입은 쉽게 ‘말 못하는 입’이 된다. 

아랫사람의 생각이 사실이나 논리에 맞지 않는다 해도, 윗사람이 이를 드러내고 보이는 방식이 문제다.

살다보면 생각은 사실이나 논리에 얼마든지 맞지 않을 수 있다. 사실과 논리에서의 부담 외에는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될 텐데, 쓸데없이,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쓸데 있이, ‘너 몇 살이야?’라고 묻는다. ‘너 몇 살이야?’라는 물음은 ‘너 생일이 언제야?’라는 물음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텐데... 왜 그렇게 물을까? 그렇게 물으면, 또 왜 꼬리를 내릴까? 다는 아니라도, 적어도, 많이 내릴까? 내림이 맞다, 좋다라고 생각해서일까? 왜 맞을까? 어떻게, 누구에게 좋을까?

또, 아랫사람들이 윗사람들을 근거 없이 배제하는 행동은 나이로는 아니지만, 짜증이나 경멸 등이 섞인 언행이다. 손녀에게도 할아버지의 느린 노래와 구식 패션 자체를 싫어하고 폄하할 근거는 전혀 없다. 할아버지의 취향이나 호오(好惡)가 자신의 호오나 감각과 다를 뿐이다. 토론이나 대화에서 어차피 나이와 무관하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면, 나이에 따라 다르게 대하고 대해지는 ‘나이의 예’는 많이 무력해질 것이다. 괜히 서로의 만남크기, 사람크기만 작게 만드는 도로(徒勞)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름이 폄하의 근거라면, 손녀 자신의 패션도 똑같은 폄하의 근거가 된다. 더구나 손녀의 패션도 곧 구식으로 바뀔 운명이다. 어떤 것이 나에게는 문제이지만, 남에게는 문제이기는커녕 ‘좋은 것’일 수 있다. 신식이냐 구식이냐가 문제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이것이 자타의 삶을 실제로 어렵게 하는지의 여부가 묻고 답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 소통크기, 만남크기는 훼손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인정이 수평소통의 기본이 될 것이다. 

‘어른이 말씀하시는 데 어따 대고 말대답이니?’ 내지 ‘어따 대고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드니?’라 하고, ‘너 나이 몇 살이야?’라고 묻는 곳에, 나이는 어리지만 하나의 인격으로 어른과 대등하게 만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부담 없이 합리적으로 나누는 길이 막힌다.

이런 태도는 어른이 하시는 말씀을 귀를 열고 몸을 굽혀 잘 들으면서, 이의 달지 말고 말대답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생각을 죽이고, 어른을 정면으로 대하지 말고, 피하되 완전히 피하지는 말면서 어른을 ‘공손하게’ 만나라는 의미다. 어른이 말씀하실 때는 눈을 내리 뜨면서 공손히 들어야지,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는 뜻이다. ‘대든다’는 뜻은 상대를 향해 정면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공손의 공(恭)은 상대를 배려(配慮)하며 ‘함께하는(共) 마음(心)’일 텐데,

이런 함께는 어른의 마음에 일방적으로 맞추는 함께이다. 

이는 비스듬히 ‘반만 만나라!’는 뜻이다. 이는 ‘반만 나-서라!’, ‘반만 맞-서라!’는 의미다. 본래 ‘맞-서다’는 ‘마주 서다’이다. 이런 공손은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아무런 부담이 없이 마주 하는 맞-남과 소통이 아니라, 만나되 피하고 피하되 만나는, 어찌 보면, 반은 ‘빗-남’을 하라는 뜻이다.

‘수직적 공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서로를 높이는 예는 예지만, 높임의 강도나 방식이 위아래 사이에서 크게 달라진다.

그런데 빗-남은 떠-남으로 이어진다. 위에서는 아래를 다 맞-나되, 아래에서는 위를 반만 만나라는 의미다. 반은 만나고 반은 떠나는 곳에, 아래의 행동공간은 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 이런 반(半) 속에서 자신의 이해(利害)와 이해(理解)의 표현 내지 관철도 반으로 준다. 줄어듦을 알지도 못 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계속, 그래도 계속 그런다. 

만남은 맞-서다와 나-서다의 ‘맞-남’으로 이어진다. 어른과는 다른 자신의 생각을 부담 없이 표현하는 것을 ‘대들다’라는 부정적인 말, 과장 섞인 말을 쓴다. ‘대들다’는, 말뜻 그대로는, 상대에 대한 관심으로 상대를 ‘대’(對)-하고 향하면서 상대의 관심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대드는 일이, 상대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관심만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공격적인 태도라면 문제다. 상대가 아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무시하고 경시해서 문제다. 그러니 상대가 어른일지라도 문제다. ‘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같이 다같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시 속에 사람은 쉽게 사물로 변한다. 그나마 안 보이기 쉬워 사람크기가 거의 영일 수 있다. 대드는 일이, 사실과 논리에 충실해야 하고 상대를 같은 인격으로 존중해야 하는 부담 외엔 상대의 생각과 다른 자신의 생각을 부담 없이 관철하는 태도를 지칭한다면, ‘어따 대고 대드니?’하는 거부의 태도는 부당하다.

어른이라는 권위로, 아니, 나이로 상대를 누르고 무시하면서, 자신의 근거 약한 생각을 많은 나이라는 외적 크기만 가지고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아래로서 자신의 생각과 말을 드러내기에 부담이 너무 크다. 이런 부담은, 일반적으로, 법이나 경찰이 끼어들어 생기는 부담은 아니다. 또, 위와 아래 사이에 난 경계선이 늘 아랫사람에게만 부담인 것은 아니다. 부담의 모양은 다르지만, 양 쪽 모두에게 부담이기 쉽다.

예를 들어, 윗사람도 이 경계선이 ‘경우에 맞게’ 열리고 닫히는지에 알게 모르게 늘 신경 쓰며 하나의 방식으로 ‘경계근무’를 서야 한다. 혹은 아래를 배려하는 일종의 너그러움이 윗사람의 의무다. 그래도 위의 부담은 그 크기에서 일반적으로 아래의 부담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다 할 것이다. 

일방과 무시 속에 진정한 소통이 일어날 리 만무(萬無)하다. 일방과 무시 속에 진정한 만남이 일어날 리 만무하다. 그리고 소통과 만남은 삶이다. 일방과 무시에 대한 강제 속에 타발(他發)적 동의(consensus)로든, 자율 속 자발(自發)적 동의로든... 일방도 무시도 모두 나 중심주의가 아닐까? 자주 위 중심주의가 가미된... 일방과 무시 속의 소통은 ‘밖으로 떨어져 나감’으로 향하고, 그리하여 하나의 소외(疏-外, Ent-fremdung)라 할 것이다. 그러니 함께요 만남이지만, 이는 ‘겉도는 함께’요 ‘빗나는 만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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