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 |
|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
위의 입만이 입이다 - 위아래로 나누어야
우리는 장유나 노소를, 남녀나 부자(父子)를, 지위고하나 노사(勞使), 빈부나 관민(官民), 선후배나 도농을, 혹은 미추나 선악, 현우(賢愚)나 사제(師弟)를 상하(上下)라는 이름표를 붙여서 나누기를 좋아한다. 각자의 자리나 역할이 수직 잣대로 재어지며, 그에 따라 서로 다른 자리나 역할들이 쉽게 상하로 생각되고 보아진다. 서로의 다름이 쉽게 수직화 된다.
우리가 구축(驅逐)할 ‘수직적 다름’이 만연한 곳에서 우리가 구축(構築)할 ‘수평적 다름’의 공간은 자연스레 좁아진다. 그런데 경우마다 상하의 성격은 변한다. 각각의 상하논리가 존재하고 기능하는 방식의 동이(同異)나 상호 영향관계를 묻고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 일이 우리들의 행동공간의 크기와 함께의 모습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이의 수직 나뉨과 경제적 양극화의 수직 나뉨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또, 나이의 수직 나뉨과 남녀 간의 수직 나뉨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들이 나와 남, 위와 아래 사이에서 ‘잘못 나뉜’ 나뉨들을 혹 대표하지는 않을까?
여기에서 윗사람, 아랫사람은 무엇을 말할까? 원래, 위아래는 두 공간적 위치를 수직적으로 상대화한 조합이다. 그러나 윗사람, 아랫사람은 공간적으로 위에 있는 사람과 아래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위아래 또한 고정된 실체도 아니다. 여기에서 윗사람의 의미는, 우선은, 일정한 사람들의 삶을 일정한 방식으로 좌우할 수 있는 힘이 센 사람을 가리킨다. 윗사람, 아랫사람이 완전히 정해져있지는 않다.
자식이나 며느리도 늘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혹은 상대에 따라서는, ‘좌우-하는’ 일종의 윗사람이 될 수도 있다. 고3인 아들은 하나의 윗사람이 되어 부모 위에 왕 노릇을 하면서 군림하기도 한다. 채찍 내지 지휘봉(丿)을 쥐고(手: ) 입(口)으로 호령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 군(君)이다. 하나의 군(君)으로서 일정한 힘으로써 상대에 임함이 군림(君臨)이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과거 신분사회에서조차 위아래가 절대적으로 고정되지는 않았는데, 근대사회로 진입하면서 신분질서는 사라지거나 아주 세밀한 양상으로 숨고 변신하며, 경제적 사회적 위아래의 나뉨은 훨씬 강화되기도 하고 위아래는 더 유동적으로 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위아래의 자리들이 구체적으로 나뉘는 모습과 방법들이 고정될 수 없음은 물론, 기계적으로 똑같을 수도 없다. 이들은 좀 강하거나 약하게 나뉠 수도 있고, 시간적으로 좀 길거나 짧게 나뉠 수도 좀 빠르거나 느리게 나뉠 수도 있다. 강제나 자발로 나뉠 수도 있고, 크고 작은 긴장 속에서 나뉠 수도 있고, 나뉜 후 쉽게 혹은 어렵게 반전되는 경우도 있고, 반전에 반전으로 엎치락뒤치락할 때도 있다. 그리고 나뉨이 자신에 불리한 자가 습관 내지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스스로 더 나누려 할 수도 있다. 사회가 분화되고 복잡한 만큼, 그 나뉨의 모습과 방법들은 아주 역동적이고도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유유서는 자본의 논리에 힘입어 ‘유장유서’(幼長有序)로도 쉽게 변신할 수도 있다. 자본에게는 젊은이가 먼저일 수 있다는 의미다.
상하 나누기를 좋아하는 한국사회에서 소통이 ‘문제없이’ 이루어지기 위하여서는, 대부분의 경우, 상대에 대한 ‘전체적 상’으로서나 ‘전체적 하’로서의 자리가 결정되어야 한다. 상하가 결정될 때, 호칭이나 존비어 등에서 ‘맞는 말’을 걸 수가 있고 ‘맞는 행동’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자신의 전체적 상으로서나 전체적 하로서의 자리가 결정될 때, 이미 갈등이 생길 수 있고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한 사람이 한 상대에 대해 사회적 지위나 나이, 성(性), 내적 크기 등 각각의 관점에서 위아래가 명확하더라도, 모든 관점에서 위이거나 아래이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각각의 관점에서 상하가 쉽게 정해진다 해도, ‘전체적 위아래’를 정하는 문제가 남는다. 하나의 개별적인 관점, 예를 들어, 사회적 지위에서만 위이고 다른 관점들에서 모두 아래인 자리라 해도, 전체적으로는 위의 자리를 점할 수도 있다.
미시적으로든 거시적으로든, 상황에 따라 각 관점의 비중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분제 시대에는 신분높이가, 자본주의에서는 물질크기가 기본적으로 결정적이라 할 것이다. 위아래 서열(序列)의 사정(査定)이 사정(私情)과 사리(私利)에 얽매어 일방적으로 일어날 때, 상대는 사리(事理)가 아니고 예(禮)가 아니라고 하며 제동을 건다. 서열의 사정(査定)을 꼭 해야 하는 사정(事情)이 있는 것처럼...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