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재원의 『단군을 만나다 』 10편에 이어 『단군을 만나다 2부』 단군은 고전의 광맥 10편을 연재코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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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 |
『홍사한은』 1세 왕검 단군 33년 경자년에 “신우申祐에 명하여 백성이 불친하며 오륜이 불명하니 너는 사도가 되어 오교五敎를 펴되 박애가 넘치게 하라.”고 하였다.
왕검단군 때에 이미 오륜의 뿌리가 되는 오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해오는 삼륜三倫을 보면 “父子는 愛之綱이요, 君民은 禮之綱이요, 師徒는 道之綱”이라 하였으며 소도경 본훈의 구서九誓를 보면 “孝于家, 友于兄弟, 信于師友, 忠于國, 勇于戰陣 등으로 나와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지금부터 4300여 년 전의 삼륜구서가 삼강오륜의 뿌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홍사한은』 3세 가륵 단군 6년 갑진년(서기전 2177년)에 “태학사太學士 고신高辛이 부모의 3년상을 지내겠다고 하므로 임금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부모 3년상은 공자의 윤리 사상이전에 지금으로 부터 4000여 년 전인 가륵 단군 때 이미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정자程子는 ‘대학을 공자의 유서遺書’라 하였고 주자朱子는 ‘경經은 공자의 말이요. 전 십장(傳 十章)은 그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해설을 문인門人이 기술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대漢代의 정현鄭玄(기원 후 127~200년)은 자사子思가 중용을 지었다고는 했으나 대학의 작자는 말하지 않았다. 담규覃逵(기원 후 30~101년)는 자사子思(기원전 483~402년?)가 대학大學을 지어 경經으로 하고 중용中庸을 지어 위緯로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 콜롬비아 대학 출신으로 존 두이의 제자로 5.4운동을 일으킨 위대한 사상가인 호적胡適과 유교의 대가인 전목錢穆 같은 중국의 최근 학자들은 중용의 작자와 함께 대학의 작자도 알 수 없고 다만 진, 한대 秦, 漢代에 나온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대학의 3강령 8조목의 내용이 바로 6세 단군 달문達文 단군(서기전 2073년)에게 팔부루八夫婁가 올린 상소문上疏文에 그 연원이 명확하게 나옴으로써 호적과 전목의 주장이 정확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즉, 이 내용은 이 두 사람의 학설에 정확한 답을 제공해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시전詩傳과 서전書傳도 저자를 모르고 있으며 주역만은 복희가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시경』과 『서경』의 내용도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고대사의 어느 광맥에 묻혀서 잠자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일반인들에게는 웅녀만 「전설의 고향」처럼 우리 가슴에 버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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