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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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
죽어 살아라 - 각자 제자리로
여자로서나 남자로서 우리들은 여자다움에 대해, 남자다움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말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여자는 조신해야 하고 남자는 씩씩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자는 조신(操身)함에 특히 조심(操心)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자가 저렇게 얌전해서 어따 써?’, ‘여자가 저렇게 억세서 어따 써?’라고도 한다.
몸놀림과 말을 여자는 ‘작게’, ‘예쁘게’ 하고, 남자는 ‘크게’, ‘강하게’ 하라는 일종의 관습적 명령이다. 그러니 남자가 징징 짜고 훌쩍훌쩍 우는 일은 ‘쪼잔’하고 나약한 일이라고 하면서, ‘남자는 죽을 때까지 세 번만 울면 돼!’라고도 한다. 남자도 여자도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듣는다. 남자도 듣고 여자도 듣는다. 우는 것도 ‘자연의 뜻’에 따를 수 없다는 뜻일까?
남자가 ‘여자-답거나’ 여자가 ‘남자-다우면’, 큰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모두 여자와 남자가 하는 일,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각자에게 정해진 ‘제 자리’가 있다,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소통에서는 남녀를 어떻게 나누는가? 이는 무엇보다, 여자 입과 남자 입, 여자 귀와 남자 귀가 어떻게 다르냐는 말일 수 있다. 여성문제의 현실을 잘 그리고 있는 몇몇 여성속담을 예로 들어 보자. 속담은 일상 삶 속에서 일상 삶을 위해, 일상의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속담은 일상생활을 하나의 방식으로 여실히 반영한다.
속담은 삶의 현장에서 말해지고, 들려지고, 언행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준다. 속담은 옛날에 생겨 지금까지 통용되는 말이다. 옛날의 속담은 지금도 ‘유효’한 것이 많다. 지금도 사람들은 ‘일정한 방식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산다는 뜻이다. 이런 속담이 직접적은 아니라도, 은근히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속담적인 현실은 얼마든지 있다.또렷이 드러내기 위해 또렷한 예들을 취한 것뿐이다.
그러나 속담에서 날카로운 통찰을 얻어낼 수도 있지만, 속담에 따라서는, 기존의 삶의 방식을 묘사함과 동시에 그 안에 머물러야 함을 함께 말해주기도 한다. 안에 갇히고 머무는 일은 정체(停滯)되어 소통되지 않는 일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속담에서 ‘여자 소리가 울 넘어가면 집안이 망한다!’ 하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도 한다. 또,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이란 속담도 있다. 여기서 암탉이나 벙어리, 귀머거리는 모두 여성을 가리킨다. 가정이 해체되지 않으려면, 여자는 울, 우리, 집 안에서 ‘얌전히’, ‘작게’, ‘예쁘게’ 혹은 ‘여자-답게’있으라는 것이다.
이럴 때, 여자도 남자도, 암탉도 수탉도, 그 자식들도 그 부모들도,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서도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의 내용은 가변적이고,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비틀리거나 채워질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이런 생각과 인식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전혀 문제가 안 되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큰 문제로 될 수 있다.
다른 관점 가운데 ‘여자도 같은 사람이다.’라는 관점이 대세다.원래부터 여자도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이되 ‘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온 경향 속에 남녀를 구분하는, 그것도 수직적으로 구분하는 언행이 남성 위주의 역사에서 있어왔다.
‘여자-는’은 남자, 수탉은 여자와는 달리 울타리 너머까지 들릴 수 있는 큰소리를 내어도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어야 함을 포함한다. 선택형 주격조사로 선택하고 구분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도 선택하고 구분한다. 남녀가 칠세만 아니면 ‘자동석’(自同席)이라는 뜻이 아니라, 여자와 남자는, 칠세든 칠십세든, ‘따로’여야 한다는 뜻이다.
누가, 왜 자꾸 남녀를 구분하고 분리시키려 할까? 혹시 ‘남녀 간의 따로’가 일반적으로 ‘상하 간의 따로’를 은근히 지원하기 때문은 아닐까? 혹은 일반인들의 ‘남녀 간 따로’가 특수인들의 ‘남녀 간 함께’를 지원하기 때문은 아닐까?
여기에서 목소리를 낮추라는 말은 말을 조금 하라는 뜻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 목소리를 낮추라는 말은 할 말 안 할 말 다 하되, 목소리 볼륨만 작게 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한 쪽은 작은 소리로 적은 말을 하여야 하고, 한 쪽은 큰 소리로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때, 의견충돌과 이해갈등이 있을 경우, 누가 억울하기 쉽겠는가? ‘작은 입’? ‘큰 입’?
그리고 ‘말을 하지 마라!’ 혹은 ‘말을 조금 하라!’는 말은, ‘여자는 많이 배우면 안 된다!’로도 쉽게 이어진다. 여자가 많이 알면, 이는 목소리를 키우면서 남편에게 대-들기만 하고 남편을 무시하면서 집안에 분란만 일으킨다는 의미다. 이럴 때는 남편이 위이고 아내가 아래인 만남 질서가 ‘기와들이 무너지듯’와해(瓦解)된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가수 이미자의 ‘못 견디게 괴로워도 울지 못하고 가는 임을 웃음으로 보내는 마음’이 여자가 ‘지니는’ 마음가짐을 넘어 ‘지닐’ 마음가짐으로 통한다. 말은커녕, 울 일을 웃어야 함은 여자는 ‘작은 사람’으로 ‘작게’, ‘예쁘게’ 살라는 문화적 명령이다.
가정에서는 여성이, 국가에서는 국민이 ‘뭘 모르는’ 것이 좋다.가정에서든 국가에서든, 각각의 위는 아래의 앎을 없게 하거나 왜곡하는 데에 관심을 쏟는 경향이 있어왔다. 특히 위의 ‘함부로 함’에 관련된 앎에서 그런다. 감출 것이 많아서인가 보다.모를 때, 위는 계속 위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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