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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30)

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죽어 살아라 - 움직임 아닌 움직임

대한민국의 여자로서 혹은 남자로서 - 적어도 일정 정도의 나이에 도달한 사람들로서 -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유행가의 한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어떤 한 작사자가 만들어낸 것이겠지만, 속담에서처럼 우리의 여자남자에 대한 일상의식을 그 자신도 모르게 반영하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한다.

물론, 남자가 배 자체는 아니다. 배는 움직이는, 움직일 수 있는, 능동적이고 동적인 존재다. 배는 그리하여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를 가리킨다. 반면 ‘항구’는 움직이지 않는, 움직일 수 없는, 행동능력 없는, 수동적이고 정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항구는 그리하여 선택할 수 없는 존재, 선택되어야 하는 존재다.

산정호수에 떠 있는 한 버들잎을 머릿속에 그려 보자. 이 버들잎은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밀려가고, 서풍이 불면 동쪽으로 밀려가고, 바람이 잠잠하면 같이 잠잠해진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밀려가고, 바람이 멎으면 같이 멎는다. 바람과의 ‘같음’ 속에, 버들잎 자신-만의 움직임은 없다. 움직임은 있지만, 자신-만의 움직임은 없다는 뜻이다.그 움직임은 남의 동작을 받는 수동(受動)이고, 남의 동작을 입는 피동(被動)이라는 것이다.

수동, 피동에서는 자신의 동작은 없고, 자신은 남의 동작에 따라 움직인다. 여기의 움직임은 피동의 움직임이다. 동사 ‘움직이다’는 피동 말고 능동(能動)의 뜻도 있고 사동(使動)의 뜻도 가진다. ‘사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다’란 말도 있고,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라는 말도 있으니까...

일상에서 우리는 이런 노랫말들을 반복적으로 듣기도 하고 따라 부르기도 한다. TV 앞에서, 버스에서, 자동차에서, 시장에서, 산책할 때, 설거지할 때, 노래방에서 그런다.

이 노랫말은 여성문제와 관련된 우리의 사회화 질서를 즉,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알게 모르게 표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가사들이 비판적으로 걸러지지 못하고 일상에 파고들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걸러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른다. 그러니 ‘같은 것’이 자연히 자연스럽고 좋은 것으로, 혹은 같아져야,닮아야, 좇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럴 때, 노자1다운 새로움, 다름, 열음, 키움은 같이하기 어려워진다.

요즈음처럼 대중매체가 발전하여, 다양한 정보를 대량으로 생산, 처리, 전파, 보급하는 때는 과거에는 없었던 만큼, 우선 이 측면만으로 고려한다면, 이런 수직적 사회화 질서는 오늘날 쉽게 고정되고 재생산될 수도 있게 된다.

대중매체의 발달뿐만 아니라, 노랫말의 이런 의미가 그간 길들여진 대중가요의 리듬, 멜로디 등과 결합하기에, 그리고 다른 ‘고급’ 문화의 공간크기가 특히 시간, 돈, 지식 크기에서 ‘작은’ 서민에게는 아주 ‘작기’ 때문에 이런 의식은 더 강하게 전파되고 정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물론, 이 가사의 구절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대중매체의 문화란 등에서, 예를 들어, 가요 관련 문제가 가십으로 언급될 땐, 특히 오락성과 강하게 연결된 ‘상품광고미학’의 논리에 의해, 이런 비판적 측면은 간과되거나 침묵되고,현상적이고 피상적인 ‘겉-사실’들만, 그것도 선별적으로 전달된다.

어떤 노래가 금주의 몇 순위냐, 이를 부르는 가수가 전국 순회공연을 언제, 뭐 타고, 뭐 입고 가느냐, 내지는 누구와 어디서 얼마짜리의 결혼을 하느냐, 결혼한 사람과 언제, 왜 헤어졌느냐, 혹은 어떤 여가수의 어디가 아슬아슬하게 노출되었느냐 등을 보이는 선정(煽情)주의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경제적, 시간적 등의 이유로 과거에 비판적 사고에서 훈련될 여유가 없었고, 있었어도 현재에 비판할 여유가 없다. 밥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매체에서 현실은 선택적으로만, 그것도 현상적이고 피상적으로만 이들에게 쉽게 말해지고 전달되기에, 문제를 제대로 제기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런 문화 현상은 문제 있는 현존 질서를 ‘사실이냐 아니냐’로만 판단하고 표현하면서 이를 재생산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다. 문제 많은 현실에 파고들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을 때, 이런 현실을 넘어설 수 있게 될 텐데... 이를 우리는 ‘안에서 밖이기’ 혹은 ‘들어가면서 나오기’의 방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뒤에 등장하는 ‘대면(對面)적 초월’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언뜻 보면 ‘양다리’ 전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선 ‘안’, ‘들어가기’, ‘대면’은 ‘밖’, ‘나오기’, ‘초월’을 목적으로 하는 진찰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양다리는 사람 하나가 다리 둘로 사랑 둘을 동시에 목적으로 하는 전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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