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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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
따라다니는 따돌림 왕따 - 무시하고 때리고 따돌리고
학원으로의 발길도 식당으로의 밥 길도 끊겼지만,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 다른 사람들이나 경찰에 알리자니, 더욱 감당키 어려운 위험이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는 것만 같다. 폭로의 말길이 막혀있고 진퇴의 발길이 끊겨있다. 혼자 끙끙 알 시간과 공간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강제되고 뒤틀린 말길과 발길만이 놓여 있다.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이제 홀로의 자리라도 확보해냈다면, 차라리 홀로의 자유라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떼어내면서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따-돌려서 왕-따인지 따-라가서 왕따인지... 정신적인 굴욕과 불안, 초조의 고통은 이런 물질적, 신체적 고통보다 훨씬 강하다. 세게라도 한두 대 맞는 것은 오히려 참을 수 있어도, 놀리고 무시하는 것은 못 참는다. 부모님 직업까지 들먹이면, 더 이상 ‘이성적’이기 어렵다.
그래도 어쩔 길이 없다. 상대가 너무 강하고 무섭기 때문이다.더구나 상대는 이미 인정받는 권력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니 피해 학생은 언제 어디서나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이제 말길이 막혀있고 발길이 끊겨 있다. 출구가 없다. 가해 학생에게는 물론,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수가 없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갈 수가 없다.이 세상 안에서는 말길과 발길이 모두 끊기니 진퇴유곡이다.나아감도 물러섬도 막혀 있으니, 삶이 삶이 아니다. 물론, 삶다운 삶이 아니란 뜻이다.
급기야 저 세상을 택한다. 삶이 죽음보다 못하다고 여겨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택한 길이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다. 그리고 죽는다. 그리고 또 죽는다. 이런 죽음이 이른바 역사상 가장 ‘진보’한 21세기 문명사회에서 버젓이 살아있다. 다 사람이고 다 삶이라면 같이 살아야 하는데... 큰 문제다.
한계상황에 이른 자기죽임의 직전에나 직후에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직후에 드러남도 무의미하지만, 직전에 드러남도 이미 늦다. 자기 죽임의 직전이라 하지만, 왕따 된 학생의 삶의 모습은 상처투성이로 얼룩졌다. 이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다. 만신(滿身)에 창이(瘡痍)다. 많이 죽어 있다는 뜻...
죽이는 자나 주위는 모두 이런 죽임이 진행되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한다. 눈치 주기, 눈치 보기가 발달한 세상이지만, 왕따 되는 학생의 부모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늘 ‘그런 줄은 전혀 몰랐다!’는 말만 듣는다.
죽는 자조차 모를 때가 많다. 무엇보다, 말하고 듣는 말길이 막혀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으니 들을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니 말할 수 없다. 문제가 개개인의 입과 귀의 문제로만 돌려질 수 있는 문제라는 의미는 아니다. 총체적으로만 물을 문제이고 풀을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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