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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

 인도에는 우주를 쥐락펴락하는 삼신(三神)이 있다. 최고신인 비뉴수는 배꼽에 연꽃이 피고 그 안에서 브라흐마가 깨어나 천지를 창조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불완전해 시바가 춤을 추면서 차례로 소멸시킨다.

 황량한 겨울은 시바의 춤을 연상케 하고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는 비뉴수의 배꼽에서 핀다는 연꽃을 상상케 한다.

 민담속의 매화는 더욱 애처롭다. 고려도공이 약혼녀가 죽었다. 너무나 슬퍼서 무덤을 지켰는데 어느 날 매화 한 그루가 돋아났다.

 뜰에다 옮겨 한평생 그녀를 대하듯 사랑했다. 도공이 늙어 죽자 새 한 마리가 매화나무에 찾아와 슬피 울었다. 그 새가 휘파람새다. 매화와 휘파람새의 이루지 못한 슬픈 연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천으로 늘려있는 매화나무 아래로 거닐면 오묘한 꽃송이들로 봄은 만화경을 이룬다. 꽃 속에서 수많은 도인과 시인묵객을 만난다.

 구부러진 등줄기에 이끼가 끼고 몸통에는 구멍이 뚫린 늙은 고목에 앳된 가지가 돋아나 피운 매화를 보는 경이로움을 더한다.

 설중매는 봄의 요정이다. 봄은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매향에서부터 시작한다. 매혹적인 감동과 영혼의 떨림이 있다. 사위가 적막할 때 먼 곳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는 뜻으로 암향(暗香)이라고도 한다.

 연(蓮)이 불교의 꽃이라면 장미와 백합은 기독교를 상징한다. 그러나 매화의 이미지는 유학이고 도교적이다. 엄동설한을 이기고 청빈 속에서 살아가는 고고한 선비의 기개이고 눈 속에서도 몰래 풍기는 매향은 군자의 덕이다. 사군자의 반열에 올랐고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송죽(松竹)과 함께 절개를 지키는 벗이 되었다.

 따라서 매화는 종교와 문학, 회화와 풍속을 관통하며 풍부한 상징성과 이미지를 통해 동양인의 서정을 가꾸어 온 문화적 유전자다. 입춘을 지나 경칩쯤을 지나가는 봄은 매화에서 아름다운 속살을 내비친다.
 
 옛 선비들은 봄의 속살이 보고 싶어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그렸다. 가장 추운 동지 다음날부터 헤아려서 81일 간을 구구라 하고 그 수만큼 매화를 그려놓고 하루 한 개씩 홍매화로 채색하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았다. 구구가 되는 3월 10일경에 소한도를 걷어내고 뜰 앞에 핀 매화를 맞이했으니 선비다운 멋이요 풍류였다.

 매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퇴계는 매화가 피는 섣달 초순에 운명했다. 그는 운명에 앞서 기르던 ‘분매(盆梅)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매화시첩이 따로 있을 정도였던 퇴계는 매화가 곧 연인이었다. 그가 추구했던 이(理)의 세계를 매화의 청진함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방을 알리기 위한 징표로 매화 한 가지를 놓아두어 일지매가 되었던 의적도 있었다. 매화꽃 속에 들면 선비의 지조와 절의가 얼마나 올곧은지 알게 된다. 향에 취한 마음은 하늘을 나는 일지매다.

 각박해진 오늘날 선비는 실종되었다. 세상은 이전투구와 권모술수로 아귀다툼이고 인면수심의 온갖 강력범죄가 판을 친다. 염치도 없어졌고 분수도 팽개친 지식인들은 오상고절(傲霜孤節)을 모른다.

 매화같이 지조 있는 선비, 절의가 굳은 지도자가 보고 싶다. 그러나 세간에는 설중매도 일지매도 없다. 온통 사이비들이요 소인배 천지다.

 구구소한도를 그린 옛날 선비들이 그립다. 그래도 지인 중 한 여류시인은 구구소한도를 그린다고 한다. 붉은 매화를 그릴 때마다 그녀의 마음에도 봄은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처럼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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