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이름의 역사는 그 뿌리가 유구하다. 예를 들면 ‘주州’는 목사가 있던 곳이나 왕비가 배출된 곳이다. ‘양주’ ‘성주’ ‘나주’ 등은 목사가 있는 고을이며, ‘여주’나 ‘파주’는 왕비가 난 곳이다. 또 ‘서라벌’(경주), ‘달구벌’(대구), ‘비사벌’(창녕) 등의 ‘벌’은 신라의 고을이름이며, ‘미추홀(물고을-인천)’ ‘메홀’(물골-수원) ‘달홀’(양양) ‘마홀’(포천)의 ‘홀’은 고구려의 고을이름이고, ‘온달부리’(전주) ‘모랑부리’(부안) ‘고랑부리’(고창) ‘소부리’(부여) 등의 ‘부리’는 백제의 고을이름이다.
‘양원’ ‘퇴계원’ ‘사리원’ ‘인덕원’ 등의 ‘원’은 쉬어가는 숙소와 주막이 있던 곳이며, ‘참’은 역과 역 사이의 간이 휴게소가 있던 곳이다. 지금도 길을 물으면 ‘한참가야 된다’라는 ‘참’이 바로 그 뜻이다. ‘선비마을’ ‘정승골’ ‘비석골’ ‘효자동’ 등은 그곳의 역사적인 유래를 담고 있다. ‘말죽거리’ ‘마장동’ ‘구파발’ ‘역삼동’ ‘역촌동’ 등은 파발마가 있던 곳이다. 요즘으로 치면 시외버스터미널에 해당되는 교통과 관계가 깊은 지명이다.
‘비상리’ ‘비하리’는 그 지역의 풍향과 관계가 있는 땅이름이며, ‘무너미(수유리)’는 눈으로는 분명히 높은 지역인데 물이 흘러 넘어가는 듯한 지형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또 온정리, 초정리 등은 온천이나 약수터이다. 성수동과 옥수동은 궁중의 전용우물이 있던 곳이다.
성씨의 본관도 밀양박씨, 김해허씨, 창녕조씨, 고성이씨, 전주이씨 등 모두 땅이름에 근원을 두고 있다. 역사가 200년 밖에 안 되는 미국은 원래 도심지가 바둑판처럼 되어 있어서 동 이름에 대한 인식이 없다. ‘월가 몇 번지’는 우리의 복잡한 도로사정과는 다르다. 우리의 주소 체계를 서구화해야 할 이유가 없다. 어찌하여 세계 문화유산 등재가치가 있는 우리 고유의 땅이름이 묻히고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도로 사정과 맞지도 않는 외국의 주소체계를 따라가야 하는가?
우리의 전통이 사라지는 세계화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엇을 위한 세계화인지 묻고 싶다. 2014년 7월 16일 세계일보 기사에 따르면, 중구청에서는 신당 1동에서 7동으로 쓰고 있는 나열식 동명을 1동은 신당동, 2동은 다산동, 3동은 약수동, 4동은 청구동 등으로 환원하고 있는 좋은 사례도 있다.
요즘의 편지 주소를 보면 동네 이름이 없다. 예를 들면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경춘로 884-1이라는 도로번지만 적혀있다. 마을 이름이 사라져 버리고 집만 도로가에 덩그러니 나앉은 꼴이 되었다. 도로명 위주의 새 주소 시행은 우리 문화를 없애는 창씨개명과 같은 일이라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올해 태어나는 아이들이 30세나 40세가 되었을 때 지금 우리가 불러주지 않는 동네 이름을 그들이 기억할리 만무하다. 지금도 종로 1가, 2가, 을지로 2가, 3가라는 도로명에 묻혀 그곳에 있는 소격동, 관철동, 관서동, 저동, 산림동을 아는 이가 드물다.
국운이라는 것은 개인이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요즘은 ‘길안내(네비게이션)’가 널리 보급되어 있어서 주소와 번지를 입력하면 산꼭대기 절이라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의 주소로도 우편배달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그런데도 전국의 주소를 창씨 개명하는 식으로 생뚱맞게 모조리 갈아 치우는 식으로 한 것은 결코 잘한 일이 아니다.
땅이름은 그곳의 역사를 지닌 문화의 화석이다. 그동안 <한국땅이름학회>에서는 도로명 주소를 되돌릴 수 없다면 동명이라도 추가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일은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명을 추가해서 넣기만 하면 된다. 우편배달도 더 쉬워진다. 다행히 2014년에 전국의 시, 군, 구청 등 140여 곳의 행정기관에 보낸 <한국 땅이름학회>의 동명병기에 관한 탄원서와 공문, 그리고 종각 4거리에서 벌인 6개월 동안의 길거리 홍보활동이 여론을 환기시켰고 탄원서의 염원대로 그나마 동명 병용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국력신장으로 볼 때 오히려 우리말 땅이름을 더욱 가꾸어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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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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