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36)

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자신의 뜻이 국민의 뜻이라네 - 민객(民客)일수록 민주(民主)라네

‘사람이 할 일’인 인사(人事)로써 사람들은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상대적으로 올려준다.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상대적으로 올리는 인사가 결국 자신을 상대 위로 올리는 기술로 드러난다면, 국민들은 술수에 속은 기분일 것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도 아니고...

정치인들이 낮은 데로 내려와서 아래를 올려주며, 아래를 위해 정치하고 아래처럼 산다고 ‘큰 소리로’ 말하여, 반은 신뢰하고 반은 의심하며 위로 올려 보냈더니, 약속대로 하지 않는다.역시 겉-짓, 거짓이었다. 그래서 공약(公約)은 ‘빈 약속’ 공약(空約)이라고 한다.

지키지도 못하는 겉-짓을 하면서 다른 후보자들과 자신뿐 아니라, 이들과 ‘국민들을 분리시키며 국민들과 붙으려’ 한다. 공약(空約)으로만 끝난다면 다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과의 붙음은 결국 국민들과 떨어진 위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인 것으로 드러난다. 위 자리는 국민의 위 자리다. ‘떨어지기 위한 붙음’일까? 선거 전에는 붙었다가 선거 후에는 떨어지기? 국민의 위로 올라가서 ‘위-적’으로 ‘위의 삶’을 살기 위해서, 허사(虛辭)로써 사익을 공익이라고 ‘잘 말할’ 줄 알면서 사익을 추구한다.

국민들에게는 또 허사(虛事)다. 또 도로 도로(徒勞)다. 한번 또 속은 국민들의 불신은 자연히 더 커지고, 그럴수록 국민들은 정치가 바뀌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러면, 그러니 다시 ‘새 정치’가 말해진다. 돌고, 돌고, 또 돌고...

국민이 바라면 바꾼다고 말하고, 뽑아주면 다시 헛일이다. 한두 번 속는 일이 아니다. 속는 자가 문제인지 속이는 자가 문제인지... 속음은 속임의 한 중요한 전제가 아닐까? 뽑힐 사람이 없어도 뽑아야 한다. 난감하다.

국민들은 이래저래 ‘민-국민’, ‘민짜-국민’이다. 민머리, 민며느리, 민둥산, 민짜못 등의 ‘민’이다.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다. ‘헛일’, 허사가 아니고 그리하여 ‘난감’하지 않다면, ‘민’, ‘결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속음도 일종의 결여가 아닐까? 허사(虛辭)와 허사(虛事)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이래저래 ‘다시’, 민주는 ‘민이 주’가 아니라, ‘민의 주’로 확인된다. 그러니 민은 여-전-히 ‘객’(客)에 머문다. 이렇게 민주의 정치는 민의를 반영하여야 하는데도, 민-이 말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고 ‘민의 주’가 민-에게 말하는 기회만 많다.

민주정치(民主政治)가 아니라 ‘민객정치’(民客政治)임에 틀림없다. 민객을 자꾸 민주라고 ‘말한다’. 민객을 자꾸 민주라고 ‘보인다’. 민객일수록 민주라고 내-보인다. 겉-치레요 겉-짓이다. 실-속만을 위한...

정치인들의 귀는 죽어 있다. 입만 살아 있다. 아니, 민의를 알아보고 ‘그럴 듯해 보이기’ 위해 귀도 열어놓기는 한다. 그러나 이는 민의를 ‘보고’ 공약(空約)을 ‘보이기’ 위해 여는 귀이다.알아야 면장도 하고 공약(空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귀는 민의를 ‘들어 주는’ - 누가 누구에게 ‘주는지는’ 모르겠으나 - 귀가 못 된다.

민들은 자신들의 어려움을 드러내야 하는데 들을 귀가 없다.들어야, 들여야 내는데... 하나마나한 말이니, 자신들이 말하고 그냥 자신들이 듣는다. 이렇게 자신들이 말하고 자신들이 듣는 말은 마음속의 불평을 늘어놓기만 하는 푸념이다. 푸념의 방법이 아니고는 말할 기회가 없으며, 정치인들로부터 들은 것은 실제와 다를 때가 많다.

귀 있지만 귀 없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자신들의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극구(極口) 드러내려 한다. 극구는 ‘입으로 할 수 있는 말을 다하면서’라는 의미다. 입이 다다. ‘입이 다다.’는 ‘혼자’와 ‘입으로만’으로 대표된다. 말로-만으로 자신-만을 위한다는 뜻?

‘입이 다다.’와 다른 곳에서 언급될 ‘다 입이다.’와의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다. 한 음절의 자리 바뀜이 종종 엄청난 의미의 차이를 초래한다. 한 음절의 자리 바뀜이 그렇듯이, 우리들의 사고와 판단에서도, 문장이나 문단 내외에서 단어들이나 문장들의 자리가 약간 바뀌면서 엄청난 차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언어와 사고는 한 몸이다. 생각의 전환이 어렵지만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생각의 변화는 앎의 변화와 함의 변화를 불러와 결국은 삶의 크기와 사람크기의 키움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리라...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