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되찾는 일과 신앙을 함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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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손정도 선생은 1882년 평남 강서군 증산면 오흥리에서 아버지 손형준과 어머니 오신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13세에 연상인 박신일과 결혼하게 된다. 그 후 23세에 평양으로 공무원시험을 보러 가던 길에 어느 목사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는데 기독교와 서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큰 감화를 받게 되고. 이튿날 상투를 자른 뒤 집으로 돌아와 기독교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선생은 평양 숭실전문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10년 베이징으로 가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러시아로 가는 일본 수상이 하얼빈을 지날 때 암살하자는 모의를 하게 되는데 결국 1912년 하얼빈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 한국으로 압송되고 진도로 유배당했다가 1914년 석방되게 된다.
3·1운동 후에 다시 상하이로 망명하였고 그 해 4월 10일과 11일 이틀간에 걸쳐 제1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가 개최했을 때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그 뒤 이동녕을 이어 임시의정원의 의장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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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興士團)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몇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흥사단보(興士團報)』를 간행하였다. 1922년 2월 23일 대한적십자회 총회에서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같은 해 동삼성 길림(吉林)에서 선교 사업을 전개하다가 1931년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과 그 뜻을 기리기 위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자료 출처 : 정상규의 독립운동가 앱과 일부 포털 공개 정보 인용 -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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