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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38)

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남들을 내다보는 과도한 시선 - 보느라고 고생, 보아져서 고생

우리사회는 남들을 많이 내다본다. 남들을 보는 눈들이 그렇게 많지만, CCTV의 눈들은 곳곳에 깔려 있다. 나를 너무 많이 쳐다보는 남의 눈이든, 그냥 남이든, 남을 많이 내다본다. 그런 만큼 많이 남들을 간섭(干涉)하고 남들에게 간섭 당한다.

보느라고 고생이고 보아져서 고생이다. 보느라고 고생이고 보이느라 고생이다. 보든 보아지든, 보든 보이든, 피곤한 일이다.혹시, 싫어하면서도 좋아함일까?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보다 남을 내다보는 눈이 발달해 있다. 밖으로 지나치게 내다보는 만큼, 안으로 들여다볼 틈이 없다. 남들의 속은 들여다보지 못 한다. 어차피 ‘겉’만을 내다볼 수 있을 뿐이다.

남들을 많이 보고 남들에 많이 보이는 소통문화에서 겉에 신경을 많이 쓴다. 남들은 나의 겉을, 나는 남들의 겉을 많이 쳐다본다. 많이 보는 만큼 말도 많아진다. ‘남에게는 남인 나를 많이 보는 남의 시선을 많이 보는 나의 시선’의 체면문화인만큼, 나든 남이든 외면을 좋게 보이게 하여 외적크기를 키우는 겉치레, 외모치레에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의 속담 가운데 ‘양말은 헐어도 구두는 번지르르하게 닦아 신는다.’, ‘가난할수록 기와집 짓는다.’, ‘집도 자동차도 가구도 클수록 좋다.’는 이런 겉치레 문화의 현실을 잘 포착한다. ‘번지르르한 구두’, ‘기와집’, ‘큰 자동차’는 모두 ‘외적으로 큰’것들이다.

그러나 외적 크기와 내적 크기 혹은 외모와 내모(內貌)가 같을 때보다 다를 때가 더 많다. 속은 헐고 가난하기 때문이다.속은 두 뜻을 갖는다: ① 속에 있어 안 보이는 물질과 ② 보이든 안 보이든, 물질이 아니라 사람 자체의 내면적 가치가 그것이다.

물질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이 먼저이고 사람이 목적이라는 의미다. 사람 잊은 물질, 사람을 수단으로 하는 혹은 죽이는 물질이 문제다. 물질이 있어야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물질이 ‘다’는 아니다. 그리고 나만 사람은 아니다. 혹은, 남에 대해서는 물질이 먼저, 나에 대해서는 사람이 먼저?자신에 대해서도 물질이 먼저일 때가 적지는 않은 듯...

속의 양말은 헐어도 겉의 구두는 번지르르하게 닦는 것은 속의 헐은 양말은 ‘안 보이게’ 감추고, 겉의 구두는 아름답게 ‘내-보이는’ 일이다. 아름답지 못한 ‘민-객’일수록 아름다운 민-주를 ‘내-세움’과 같은 맥락이다. 가난할수록 기와집 짓는 것은 속이 작을수록 겉으로는 큰 것을 보여야 함, 보이려 함을 가리킨다. 일종의 ‘감추는 보임’이다.

‘큰 것을 내-보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효과는 ‘좋은 이미지’다.자기의 것 중에서 긍정적인 일부만을 내보이든, 가짜를 진짜로 내보이든, 혹은 남의 것을 빌어 자신의 것으로 내보이든, 이 내보임이 우선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이미지를 위한 착각(錯覺)내지 착시(錯視)다. 착시는 ‘잘못 봄’이다. 내가 ‘잘 보이기’의 일차 목적은 남이 ‘잘못 보기’라는 뜻?

국산차에서 ‘겉’을 ‘떼어-내-버리고서’ 그 ‘속’을 유명 외제차의 겉으로 ‘씌움’으로써 겉만 바뀐 가짜 BMW가 탄생한다. 겉을 치장해 내-보였는데, 보는 시각에서 만약 착각이 안 일어난다면, 겉 씌움의 효과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겉이 속을 다르게 보이게 한다는 기능에서는 거짓이지만, 겉 자체는 실제다. 가짜 BMW의 일부를 차지하는 겉은 실제이다. 부분인 실제는 전체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하나의 마중물의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이를 보는 ‘착각’이 착각만은 아닌 면도 있다.

그리고 착각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의사나 보호자가 경우에 따라 환자에게 병을 감추는 것 자체는 덕일 수 있다. 이런 착각이 무엇을 추구하며, 그 추구가 어떤 상황에서 요청되고,어떤 효과를 불러오는지 등을 묻고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가짜 BMW를 만들어 탈 때, 그것은 그에게는 BMW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선은 BMW다. 아니,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신에게도 BMW다. 예를 들어, 그 꾸밈이 꾸미는 자의 목적에 부합될 수 있다면, 이는 실제 목적에 도달하는 것일 테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의 눈’을 의식한 가짜 BMW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남’이 없거나 ‘눈’이 없으면 착각의 주체와 함께 그 필요성이 사라진다. 나는 속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요, 남의 눈은 속과 달리 ‘잘 보인’ 겉을 ‘속까지 잘된 것’이라고 ‘잘못 보는’(錯視) 혹은 이 ‘겉을 소비’하는 속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속을 아는 자는 속을 일이 없다. 법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관습적으로든, 통찰력에 의해서든, 이런 착각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위가 방해를 받는다면, 혹은 ‘잘 살기’나 ‘살아남기’ 위한 착각생산의 필요성이 사라진다면, 겉껍데기뿐인 유명 차는 사라질 것이다.

남을 많이 보는 사회이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나를 많이 보려는 것을 무조건 싫어하지만은 않는다. 남들이나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내 것을 나는 과시하려는 일도 있으며, 나를 배려하는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상품의 광고에서처럼, 과시하려 할 때는 오히려 안 볼까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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