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
남들을 내다보는 과도한 시선 - 다른 사람이 나라고?
남들을 많이 보는 곳에서 남들에 대한 말도 많다. 많이 보고 말하고 끼어드는 남들의 시선과 간섭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결혼을 했는지 물을 때, 어떤 직업이냐,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몇 살이냐고 물을 때 난감할 때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떳떳하게 내세울 것이 없거나, 내세울 것이 있어도 ‘괜히’ 자신이 없거나 피곤해서다. 결혼을 안 했을 때, 뭔가 모자람이 있어서일 거라고 여길 거라 여기니 부담이다. 일자리가 불안하거나 임금이 낮거나 육체노동이면, 괜히 죄인 같기도 하여 주눅이 든다.
남들을 ‘내다-봄’은 쉽게 남들을 ‘내리-봄’으로도, 놀리기로도 이어진다. 상대가 자기만 못해 보일 때, 더 보고 더 묻는 것 같다. 비교하여 우월감을 느끼려는 것 같다. 그렇게도 우월하고 싶을까? 자신이 다른 곳에서는 열등하다고 느껴서일까?
홀로 보기는 좋아하지만, 마주보기는 싫어한다. 남들을 과도하게 내다-보지만, 이는 남들을 들여다-보는 시선은 아니다. 과도한 시선은 배려하는 시선, 만나는 시선, 소통하는 시선이라기보다 의심하는 시선, 피하는 시선, 빗나가는 시선, 일방적인 시선, 눈치 보는 시선인 것 같다.
그리하여 남을 경청하고 이해하며 배려하는 마음은 적으면서도, 시선과 관심이 남들에 많이 향하는 신기함이 있다. 남을 많이 쳐다보되, 남의 말은 잘 못 듣는다는 것이다. 시선(視線)을 남에게 돌리되, ‘청선’(聽線)은 남에게 돌리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남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남에 시선을 보내면서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보는 것일까? 그리고 남에게 나의 말은 많이 해도, 나는 남의 말은 듣지 않음일까?
혹시 수직주의가 물음과 답의 열쇠일까? 이런 수직주의는 혹시 어떤 식으로든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생각에 크게 좌우되면서,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무시하고 안 들으려 함은 아닐까? 작은 사람들은 더 작게 보고 큰 사람들은 더 크게 보는 것일까?
이렇게 남의 말을 잘 듣기와 못 듣기는 기이한 방식으로 공존한다. 여기에서 남의 말을 ‘잘 듣기’는 주관이 약함을 말하고, 남의 말을 ‘못 듣기’는 소통능력이 작음을 가리킨다. 다름을 배제하고 남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남들의 태도와 시선에는 눈치를 보며 자신(自身)을 자신(自信)하는 모습이 약하다.
나를 너무 쳐다보는 남의 눈을 나도 너무 쳐다보면서 이에 맞추어 내가 갈 길을 정한다. 내가 갈 길, 내가 살 길에 남의 시선이 너무 많이 들어와 섞인다. 그러니 ‘나가 나다!’라고 커밍아웃하기가 어렵다. 자신의 일을 ‘아는 언니’, ‘아는 사람’의 일이라고 해야 한다. 나의 삶이 남의 삶 같다. 혹은 남의 삶이 나의 삶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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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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