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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40)

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남들을 내다보는 과도한 시선 - 우리 요새 신혼이잖아

나를 올려 보고 부러워하는 시선은 나에게 ‘좋은 시선’이고, 나를 내려 보고 부담 주는 시선은 ‘나쁜 시선’이다. 남을 지나치게 쳐다보는 사회에서 과시(誇示)도 탄력을 받는다. ‘우리 사위가 청와대에서 일하고 있지만서도~.’라 해도, 우리 문화가 과시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자신을 크게 보임’인 과시를 안 쳐다볼 것이다.

이런 시선문화에 무시도 이어진다. 과시와 무시의 풍조는 언제 어디서나 어느 정도는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밖으로 내다-보기’와 체면문화의 맥락에서 과시와 무시가 지나칠 정도로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왕따, 과도한 혼수, 지위, 학력, 비싼 차, 외모, 사는 집 등에 과시와 무시의 계기가 숨어 있다.

과시(誇示)는 이런 보는 시선들에 나를 ‘크게’ 내보이는 일이다. 혹은 놀람과 경탄, 부러움의 시선을 만들어내는 일? 가랑이를 크게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인 ‘夸’(과) 자 자체가 ‘크게 보이다’, ‘자랑하다’의 뜻을 가진다. 여기에 ‘말’(言)의 과장이 붙어 강화되어 ‘자랑할 과’(誇) 자로 된다.

사람들은 주로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가지고 있는 물질적 크기나 이를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하여 보이려 한다. 과시는 자기, 자기 것 또는 자기와 관계되는 것을 남에게 ‘자랑하여 보이는’ 일이다. 자랑은 ‘자기 또는 자기와 관계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어 뽐냄’이다. 뽐내다는 뜻이 ‘잡아 당겨 밖으로 나오게 하다’ 혹은 ‘가려내다’의 뜻을 갖는 ‘뽑다’에서 파생한 것이라면, 자랑은 남에게 자기 혹은 자기 것 중에서 장점 혹은 긍정적 이미지를 ‘가려-뽑아-내어-보이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교사회에서 많이 강조되는 체면(體面)이 ‘사람들이 공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자아 이미지’라 한다면, 과시는 자신의 체면을 세우는 한 방식이 될 것이다.

A: 우리 요새 신혼이잖아.
B: 그렇게 사이가 좋으냐? 좋겠다. 제2의 신혼이냐?
A: 그게 아니고, 애들이 없잖아.
B: 애들은 어디 갔는데?
A: 우리 애들 다 캐나다로 유학 보냈잖아.
B: 언제 보냈는데?
A: 보낸 지 일 년이 넘었지.
B: 유학비 장난이 아니지?
A: 그럼, 돈 없으면 못 보내. 그래도 애들 아빠가 능력이 되니까 보내지. 일 년에 얼마 드는지 알아?
B: 얼만데? 많이 들지?
A: 그럼, 적어도 한 7천은 들어.
B: 네 남편 능력 좋다 야.
A: 애들이 너무 맘에 들어 하고 적응을 너무 잘해 신경 안 써. 1년에 한 번씩 남편하고 들어가서 여행 쫘~악 하잖아.

과시에서 ‘선택’과 ‘부풀림’이 중요하다. 이럴 때, 과시는 인간을 포함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 하나의 방식으로 - 있는 그대로보다 더 좋아 보이게 바꾸는 행위인 ‘겉치레’로 이어진다. 치레가 ‘잘 손질하고 꾸며 모양을 냄’이라 할 때, 치레는 겉의 치레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치레 개념의 의미에서 ‘겉’, ‘더 좋게’의 속성이 중요하다.

겉만이 보임(示)의 대상이다. 겉모습만이 보인다. 투명한 겉이 아닌 한, 그 겉이 싸고 있는 속은 안 보인다. 작은 것을 키우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하든, 한 존재에게 작은 혹은 없는 장점을 있는 혹은 큰 장점처럼 치레하여 꾸며내는 것이 겉치레요, 자신에게 있거나 없는 장점을 골라 그대로 혹은 있는 것으로 내지 더 큰 것으로 드러내 보임이 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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