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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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
남들을 내다보는 과도한 시선 - 크게 보이기, 작게 보기
그런데 경쟁사회에서 남에게 나를 ‘잘 보임’ 혹은 ‘크게 보임’은 남을 ‘잘못 봄’ 혹은 ‘작게 봄’, ‘업신여김’ 내지 무시(無視)와 경시(輕視)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 과시하면서 남을 무시하기도 하며, 무시하면서 과시하기도 한다.
무시는 ‘사물의 존재나 가치를 알아주지 아니함’ 혹은 ‘사람을 업신여김’이다. 원래, 무시는 가시거리 내에서 볼 수 있는 존재를 ‘보지 않음’(=無視), 보지 않으려는 업신여김을 말한다. 업신여김은, 물론, ‘없이 여김’, ‘없는 것으로 여김’에서 온 것으로 방약무인(傍若無人) 내지 안하무인(眼下無人)과도 통한다. 보는 사람은 있지만, 보아지고 만나지고 대해지는 상대는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여기므로 문제다. 한 인격이 다른 ‘있는 인격’을 ‘없는 인격’으로 볼 때, 여길 때, 문제는 커진다. 내가 남을 업신여기면서 만날 때, 이는 내가 남을 보잘 것 없이 생각하며, 내려 깔보거나 소홀히 대하는 일, 한마디로, ‘작게 보는’ 일 혹은 ‘없는 것으로 보는’ 일로 이어지며, 심지어, 남을 대하기나 만나기, 보기 자체를 부정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있는 사람인데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대해진다면, 이 사람은 이제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숨고 싶거나 죽고 싶을 것이다. 혹은 반발하고 싶을 것이다.
‘큰 상품’을 파는 백화점의 명품관이나 호텔 등에서 물질크기에서 ‘큰 사람’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는 ‘어서 오세요!’하고 ‘큰 인사’를 보내지만, ‘작은 사람’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는 의례적 눈인사 정도의 ‘작은 인사’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명품관에서는, 예를 들어, 치장한 명품이나 타고 온 승용차가 ‘사람크기’를 정하고 이에 따라 그를 ‘만나고 대하는 방식의 크기’가 정해진다. 이는 사람들을 외적 크기로 나누어 수직화하고 그에 맞게 대우함이다.
인천역의 청소용역 노동자 한 분은 ‘우리는 투명인간이야. 아무도 우리의 존재를 모르지!’라고 말한다. ‘투명인간’은 잘 안 보이는 ‘작은 사람’을 넘어, 아주 안 보이는 ‘없는 사람’이다. 못보고 안 보는 사람들에게 그는 더 이상 사람이기 어렵다.
그렇지만, 때론, 내적 크기가 물질크기를 무시하기도 하고, ‘작은 물질크기’가 ‘큰 물질크기’를 무시하기도 한다. 물질크기에서만 큰 이른바 ‘졸부’(猝富)의 내적 크기에서의 작은 행동은 정신크기 혹은 작은 물질크기에 의해 쉽게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과시와 무시는 가까운 관계에 있다. 하나는 ‘보이는’(示) 일이고, 다른 하나는 ‘보는’(視) 일이다. 하나는 자기를 보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남을 보는 일이다. 하나는 자기를 크게 보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남을 작게 보는 일이다. 하나에서는 ‘남의 눈’이 그리고 다른 하나에서는 ‘나의 눈’이 한 존재를 크거나 작게 ‘보는 일’을 한다.
자신을 크게 보인다 해서 남이 자신을 늘 크게 봐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일반적으로 이 주장은 유효하다. 나와 남의 만남과 소통 속에 하나에서는 내 장점의 그리고 다른 하나에서는 남 단점의 선택과 부풀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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