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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한은 다양한 의미가 있다

 한은 알타이어다. 알타이족은 몽고족, 만주족, 동이족이다. 그 중에서 고조선을 세운 민족이 동이족이고 한민족의 시조다.
 
 따라서 한은 외래사상에 때가 묻지 않는 우리민족의 순수한 정신적 뿌리이다. 그러나 수 천년동안 흘러오는 과정에서 한의 의미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시장을 저자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종모 교수가 보는 몇 가지 이음동의(異音同意)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한민족의 경전인 천부경에서 일(一)이 11개가 나온다. 이것은 전부 한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의 다른 소리이다. 천부경의 첫 구절이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고 끝 구절은 일종무종무(一終無終無)이다. 경전의 앞뒤가 모두 일로 시작하고 끝난다.
 
 여기서 일(一)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리학적 의미의 숫자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하나이다. 이런 점에서 한과 일은 비록 나타나는 소리는 다르지만 의미상으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천부경 첫 구절을 문자대로 해석하면 일은 처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표현하면 일은 없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한과 일은 아무 것도 없는 빈 곳인 무(無)에서 생겨난 것이다. 무가 유를 낳고 유가 무를 낳는다는 동양적 패러다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과 일은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주제로 신비적 존재의 뜻을 함의하고 있다.

 일은 비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있음과 없음을 함께 가지고 있다. 있음은 없음에서 생기고 없음도 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도 상대적인 관계로 그 뿌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음동의어인 한과 일은 있음과 없음을 떠난 궁극적 실제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말과 글로써 다할 수 없는 모든 존재의 뿌리이며 우리의 인식과 지각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삼국사기에 고운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에서 말하기를 우리나라에는 오래전부터 현묘지도(玄妙之道)가 있었으니 이를 풍류라고 했다. 이 교를 세운 근원은 선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도는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는 것으로 모든 민중과 함께 접화군생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의 현묘지도도 바로 한을 의미한다. 물론 도와 한은 소리는 다르지만 근본적인 뜻은 같다. 도와 한이 사상을 담는 그릇이나 포대에 비유하면 그 그릇과 포대는 한없이 큰 것이다. 모든 사상을 자기 자체 안에 내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고운 선생은 현묘지도 내에 이미 유불선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한은 처음과 끝이 없는 존재로서 모든 사상이 여기에서 나온다. 따라서 도와 같이 삼교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묘지도도 한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현묘한 도라고 한 것은 배달민족의 수 천 년의 정신생활을 일관해온 한을 의미한 것으로 믿어진다. 노자의 도보다 더 크고 높은 심오한 경지를 가진 것으로 도 앞에 현묘라는 형용사를 붙인 것이다.

 또한 대(大)도 일반적인 의미군(意味群)으로 한을 의미한다. 원효의‘대승기신론’의 대승(大乘)의 정의와도 상통한다. 크다고 해도 어느 구석진 곳에라도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고, 작다고 해도 어느 큰 것이라도 감싸지 못함이 없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텅 비어 있고, 만물이 다 여기에서 나온다.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어 감히 이를 대승이라 한 것이다.

 또한 한은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의 백(白)과 같다. 밝은 것은 한없이 큰 것이다. 여기서의 백도 한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육당은 동북아시아에는 백두산, 태백산 등 산 이름에 백(白)자가 많다고 했다.
 
 한은 일(一)이나 도(道)와 같고 대(大)와 백(白)과도 같은 의미로 통한다.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면서 다양한 의미로 중첩된 것이 한이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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