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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돌무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문제는 탄생과 죽음이다.

 탄생이 신비라면 죽음은 경외(敬畏)이다. 죽음을 경외의 대상으로 보게 되는 것은 절대자에 대한 인식과 영생에 대한 염원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곧 고대인의 믿음이요 종교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문화 중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오랫동안 유지된 원형적인 관습이 “장례”이다. 따라서 옛사람들의 주검의 처리가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느냐를 연구하는 것은 고대문화권의 민족 간의 차이를 밝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랜 시기의 무덤은 구석기 시대까지 소급한다. 주로 동굴생활을 했던 그들의 일원이 죽으면 동굴안 주거지의 방바닥을 파고 흙을 덮은 뒤 돌을 주워 모아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신석기 초기에 이르러 인간은 묘제(墓制)를 확립했다. 각 민족문화의 독특한 개성을 표출하는 징표가 된 것이다.

 고대 한민족의 무덤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돌을 주된 재료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크게 구분하면 다듬은 돌로 사람 하나를 눕힐만한 관을 만드는 “석관묘”와 다듬지 않은 돌로 시신을 덮고 쌓는 “적석총”이 있다.

 후대에 오면서 사자를 잡석으로 싸서 묻고 큰 돌로 덮어놓은 “고인돌”과 돌로 방을 만들고 때로는 옆을 타서 입구와 연도까지 갖춘 “석실묘”로 나누어진다. 석관묘는 주로 하천을 중심으로 퍼져있고 적석총은 비바람이나 동물로부터 시신을 보호하는 뜻이 있었던 묘제였다.

 고인돌은 우두머리의 장례를 위해 10톤이나 되는 거대한 석재를 캐내어 수백 명의 장정이 동원되어 만든 “거석문화”의 신비가 깃들어 있다.

 동이족의 장례에는 돌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만큼 우리 민족사상의 기저에는 돌에 대한 깊은 애착심이 깔려 있다.

 또한 1970년대까지 해안지방에서 성행되었던 우리나라 특유의 장례풍속으로 초분(草墳)이 있었다. 초분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돌이나 통나무 위에 관을 얹어놓고 탈육(脫肉) 될 때까지 이엉과 용마름 등으로 덮은 초가형태의 임시무덤을 말한다.

 이 초분은 2~3년 후에 다시 해체하여 뼈를 취하여 매장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곽(槨)안에 뼈를 두는데, 온 가족이 하나의 곽을 함께 사용한다. 죽어서도 하나가 되는 독특한 ‘한’문화의 원형을 본다.
 
 고인돌이 지배층의 장례문화라면 초분은 소박한 민초들이 조상에 대한 예의와 후손들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왜정시절의 위생법실시와 현실적 어려움으로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이에 반해 중국인들의 무덤은 흙으로 만들어지는 특징이 있으며 크게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즉 벽돌무덤과 흙으로 덮은 목곽분이다.

 벽돌무덤은 한 무제이후 발전하여 낙양 등지에 100여개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고대 중국인들이 선호했던 묘제였다. 흙으로 덮은 목곽분은 양자강 쪽에서 많이 발굴되고 있는데 벽돌무덤보다 오래된 형태이다.

 어떤 민족이던 무덤에 관한한 그들이 존중하고 있는 관습과 전통을 좀처럼 버리지 않는 폐쇄성을 가진다. 고대 한국인의 무덤은 꼭 돌로 만들어지는 전통을 지켰다. 고구려의 장군총이나 수많은 석실묘 등이 모두 돌로 만들어진 무덤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라의 금관총, 천마총은 물론 백제에까지 공주지방에 석실묘가 있다. 끈질긴 민족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아울러 지금까지 한반도에 산재한 돌무덤의 기원은 빗살무늬토기의 북방전래설처럼 시베리아에서 전해졌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대량의 돌무덤이 발견된 대릉하유역(발해 연안, 동이족의 근거지)의 유적들의 방사선 측정연대가 기원전 3500년 전으로 나타남으로 시베리아의 돌무덤보다 무려 2000년이나 앞선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돌무덤의 기원은 발해연안으로 추정하는 학설이 유력해지고 있다.

 호젓한 고갯길에서 동구 앞 서낭당에서도 유서 깊은 사찰을 오르는 산길 모퉁이에서도 예외 없이 돌무더기가 쌓인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고 가는 행인들은 작은 돌 하나라도 포개어 놓으면서 기원을 하는 모습을 우리 주위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우리민족의 ‘집단 무의식’으로 원초적인 신앙행위이다. 이처럼 돌무덤은 고유한 “한”문화의 원형이며 그 원형 또한 고조선의 영토에 이르는 광범한 영역에 고루고루 퍼져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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