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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마흔일곱번째'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얼렁뚱땅의 미학 - 중의법의 힘

얼렁뚱땅은 만남과 소통의 상대가 별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고 서두르면서, 자신의 속임수를 들키지 않게 슬쩍 넌지시 넘기는 모양이므로, 일단은 유명(有名)하되 무실(無實)이다.

이는 사물의 ‘보이는 겉’과 ‘감추는 속’이 다르거나, 겉은 있지만 속은 없는 경우다. 이는 문제 있는 상황을 적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문제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보여주면서 ‘적당히’ 넘기는 관행이다.

그것은 보이고 안 보이는 것이 혼재하고, 느리고 빠른 것이 혼재하고, 이쪽과 저쪽이 혼재하여 커다란 변화와 불이익이 자신에게 발생하는 것을 모르게 하며 속이는 모습이다. 이런 ‘혼재의 전략’, ‘섞음의 전략’이 구분을 어렵게 하며 얼렁뚱땅을 도와준다.

여기에서 중의법, 다의법이 큰 역할을 한다. 이는 하나의 말 내지 행동을 보이되, 그 의미가 둘 이상으로 읽힐 여지를 남길 수 있는 전략이다.

한 문장의 메시지에 두 의미를 갖는 개념이 셋만 있어도, 이 문장은 2×2×2의 8가지의 서로 다른 의미를 포함할 수 있다. 이때, 듣는 자가 얻는 의미는 1/8로 줄고, 말하는 자가 표현할 수 있는, 그리하여 빠져나갈 수 있는 의미는 8배로 늘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7명 중 2명의 김(金) 가가 있으며 영수네 집은 남쪽에 있는데, 그쪽으로 가면 우선 시장이 나오고, 좀 더 가면 밭이 하나 나오는 상황이 있다. 김 가인 나(A) 아니면 동생(B)이, 시장(a) 아니면 밭(b)으로 가서, 사과를 사 오든지(α) 얻어 온다는(β) 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자.

이를 김 ‘가’가 영수네 집 ‘쪽’으로 가서 사과를 ‘구해온다’로 표현한다면, 두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세 개념이 들어 있는 문장이지만, 그것이 지시하는 내용은 A-a-α로부터 A-a-β 등을 거쳐 B-b-β까지 8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는 얘기다.

보내는 말의 의미가 8배로 늘고, 받는 말의 의미가 1/8로 줄 때, 듣는 자에게는 7/8이 감추어져 안 보이게 되고, 말하는 자에게는 바로 이 안 보이는 공간이 하나의 ‘피신처’가 된다. 얼렁뚱땅은 기본적으로 이 피신처의 덕택으로 가능한 것이 아닐까?

메시지를 받는 자는 일곱 문장을 더 들어야, 받은 메시지가 지시할 수 있는 것 전체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나마도 본래 메시지를 보낸 상대가 대답할 시간과 의지 등을 가져야 한다.

메시지의 1/8만 받는 자는 ‘정보의 약자’가 되면서, ‘정보의 강자’의 ‘검은 속셈’인 속임에 넘어가기 쉽게 된다. 이 속임을 속는 자는 물론, 속이는 자도 모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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