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돈키호테의 묘비명

하늘에도 얼굴이 있듯이 사람 사는 일에는 길흉화복이 있다.

 그러나 길흉을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자신으로 인해 생긴 결과다. 저문 날, 노년이 행복하려면 평소의 처신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일이 따르지만 지난날의 실수와 과오에는 어김없이 도깨비 뿔 같은 업보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길흉도, 생사도 하나지만 사람의 운명에는 희비가 다르고 명암이 엇갈린다. 따라서 솔직하고 진실한 대응이 훨씬 더 ‘큰 바위 얼굴’다운 면모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이요 순리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큰 수레바퀴이다. 순리대로 돌아갈 뿐이다. 세상에 사계절이 찾아오듯이 인생에도 나이에 맞는 시절이 있다. 그때마다 걸맞는 역할과 해야 할 소임도 다르다. 주역에서는 이를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풀이한다.

 원(元)은 선(善)이다. 원은 만물이 자라나는 모습이고 선은 자라게 하는 천지기운이므로 크고 위대하다. 선하므로 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절은 봄이요 사람으로는 소년기다.

 형(亨)은 미(美)다. 계절로는 여름이고 인생으로는 청년기로서 만물이 자라 무성한 모습을 보일 때이다. 풍성하고 번영하여 형통하므로 아름다운 전성기가 된다.

 이(利)는 의(義)이다. 만물이 성장을 멈추고 결실하는 모습이다. 오곡백과가 영글었으니 풍요롭고 모두에게 이롭기 때문에 가을은 의(義)로운 것이다. 당당하고 떳떳한 장년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역의 원리는 ‘철없이 살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다.

 끝으로 정(貞)은 이(理)이다. 열매 속에 씨앗을 남기듯 만물이 본성을 가꾸는 모습이니 곧 겨울이다. 함부로 동요하지 않고 정적을 지킨다.

 곧은 마음으로 소장(所藏)하는 의미도 있다. 남을 배려하고 염치를 차리며 겸허하게 사는 이순(耳順)의 인생이 이런 차원이다. 나이 70에 이르러 종심소욕 불유거(從心所欲 不踰炬)라 하여 뜻하는 일마다 도(道)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 공자의 경지를 우러러보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거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라면 성인의 경지는 아니라도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은 잃지 말아야 한다. 숨겨두면 감쪽같이 멈추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부터 어리석은 집착이다.

 천지에 멈추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변하고 움직이며 그 우주적 에너지가 기(氣)이다. 노자가 우주를 풀무질이라 하고 장자가 일월(日月)을 조롱 속의 새라고 했던 까닭이다. 또한 이런 풀무질로 흔들리는 조롱 속에서는 무엇이든 변할 수밖에 없다. 원형이정이란 만물을 흔드는 궤적이요 기운인 것이다. 이것을 거역할 자는 아무도 없다.

 캄캄한 어둠 속에 아무리 깊게 숨겨둔 비밀이라 해도 해가 뜨면 백일하에 들어나기 마련이다. 이것이 세상이치이고 역(易)의 도(道)이다.

 도를 알면 근심이 없어지고 주어진 처지를 편안하게 여기며 한결 같은 마음으로 인(仁)을 행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천하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인간은 천하 만물과 하나이기 때문이다. 천지와 하나가 되면 소유개념도 결핍의식도 없어진다. 이것을 깨닫지 못해서 백팔번뇌에 사로잡히고 탐욕이 만든 자기파멸의 수렁에 빠져 허적거리는 것이다.

 몸에 맞지 않는 갑옷은 벗어야 만인과 하나가 된다. 진실을 향해 돌을 던질 자는 없다.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사람이 가질만한 달관이다. 

 ‘미쳐서 살다 제정신이 들어 죽었다’는 돈키호테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사람은 누구나 철이 들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만섭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