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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독립운동가 유자명, 강기동, 이시영 선생의 서거일

오늘은 독립운동가 유자명 선생(1894.1.13~1985.4.17) 서거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국제주의자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까지도 혁명이 어떠한 것인지를 모르고, 민중을 위하고 혁명을 위한다는 구실 하에 실제로는 민중과 혁명을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희생시키려는 자가 있는 것이다.”

-선생이 중국 국민혁명 주도세력을 비판한 내용 중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오늘은 독립운동가 강기동 선생(~.1911.4.17) 서거일

제2창의원수부 의병대장

강기동 선생은 일제 헌병보조원으로 발탁되어 근무하다가, 헌병부대로 끌려온 의병들을 보고 이들을 탈출시키고 본인 스스로도 의병활동가로 변신하여 항일투쟁에 뛰어들었다.

이은찬의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으며, 이은찬의 피체 이후에는 의병장이 되어 제2창의원수부를 이끌며 일군과 수십 차례의 격전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의 대대적인 의병토벌작전으로 피체, 30살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오늘은 독립운동가 이시영 선생(1868.12.3~1953.4.17) 서거일

조선,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경주로, 자(字)는 성흡(城翕), 성옹(聖翁), 호는 성재(省齋)·시림산인(始林山人), 본명은 성흡(聖翕)이다. 총리대신을 지낸 김홍집의 사위이다. 1885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1891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부승지, 우승지(右承旨)에 올라 내의원 부제조, 상의원 부제조 등을 지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독립 운동에 투신, 일가족 40인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고, 1919년 9월 통합 임정 수립 이후 김구, 이동녕 등과 함께 임시 정부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광복 이후 귀국,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임정 요인이 단정론과 단정반대론으로 나뉘었을 때는 단정론에 참여하였다. 1948년 7월 24일부터 1951년 5월 9일까지 대한민국의 제1대 부통령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했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의 후손으로, 영조 때의 정승 이종성의 5대손이었다.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李裕承)과 동래 정씨(東萊鄭氏)의 아들이며, 이건영(李健榮), 이석영(李石榮), 이철영(李哲榮), 이회영(李會榮)의 동생이자 이소영(李韶榮), 이호영(李護榮)의 이복 형이었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신익희와도 인척간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 자료 제공 : 정상규의 독립운동가 앱 >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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