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이 자연스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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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
물질크기로 쫓고 쫓기는 외로운 길 - 미래 같은 과거
어렸을 때의 목동리(木洞里)가 생각난다. 당시의 농촌은 가까운 이웃들이 매일같이 만나 같이 일하고 같이 먹으며 같이 논다. 떡을 하면 이웃집에 돌릴 것을 먼저 떼어 놓고 먹으며, 큰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다.
‘고추 밭을 매도 참이 있다.’는 말은 아무리 쉬운 일에서라도 새참을 먹는다는 뜻이다. 모내기하는 일꾼들을 위해 새참 심부름을 한 일도 있고, ‘어이~, 막걸리 한 잔 하시게!’하며 같이 먹고 마시는 정다운 정경을 자주 보기도 했다.
마을의 뒤에는 동산 놀이터가 있었고, 앞에는 적당한 크기의 들이 있었다. 들 한가운데엔 아이들의 최대 놀이터이자 학습 터인 시내가 ‘있었다’. 지금은 ‘없다’. 실은, 있었던 논두렁, 밭두렁과 버드나무, 미루나무, 느티나무 등도 이제는 없다.
여름에는 하교 길에 친구들과 말장난, 몸 장난을 하면서 냇가를 따라 걷다가 더우면 풍덩하고 뛰어들거나, 집에 돌아와 책가방을 놓고서 그물과 노란 양은 주전자를 들고 2촌, 4촌, 6촌, 8촌 동생들이나 또래의 친구들과 피라미, 붕어, 모래무지, 송사리, 새우, 미꾸라지, 메기, 빠가사리, 뱀장어 등의 물고기도 잡는다. 느리고 잘 못 숨는 붕어가 가장 잘 잡히고, 빠르고 잘 숨는 뱀장어가 가장 안 잡힌다.
물고기를 잡다가 수영도 하고, 검은 개흙도 몸에 바르고, 씨름도 하고, 몸싸움도 하고, 말싸움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백사장 위에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풀피리도 만들어 분다. 또 풀잎 위의 잠자리나 나무 위의 매미나 사슴벌레도 잡고, 어떤 때는 잘 익은 ‘돔부’ 콩이나 옥수수도 슬쩍 서리하여 입 언저리가 시커멓도록 구워먹으면서 논다.
때로는 검정 고무신 한 짝을 냇물에 떠내려 보내고 꾸중을 듣기도 한다. 엊그제 만난 내 육촌 형은 남의 새신을 모래 속에 감추고서 자신에게 절하면 찾아준다고 하기도 했었다. 놀다가 옆 동네의 친구라도 만나면, 더욱 신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겨울에는 대나무를 잘라서 연을 만들어 날리고, 숨바꼭질, 잣 치기, 구슬치기, 팽이치기도 하며, 봄가을엔 동산에 올라 칙 뿌리도 캐먹고, 논에 들어가서 우렁이도 잡고, 비둘기의 새끼나 알을 내려 그냥 혹은 부화시켜 키워보려고도 했다. 개구리를 잡아 구워먹기도 하고, 밤이나 감, 배, 포도, 대추, 오이, 가지도 따먹고 무도 뽑아먹었다.
노는 일의 반 정도만 나열해도 이렇다. 아니, 그 1/3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목동리가 특별한 시골마을은 아니다.
오늘의 도시 아이들은 너무 단조하고 삭막하고 빡빡해 보인다. 학교공부와 숙제 아니면 학원공부와 과외공부에 쫓길 대로 쫓긴 후, 시간이 더러 있으면 사탕 내지 햄버거 먹기 아니면 컴퓨터 내지 핸드폰 게임이 다인 것 같다.
아이들은 자연과 사람을 자유로이 만나 소통하며 놀고 배울 시간도 공간도 사람도 마음도 없다.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어울림이 있을 때, 사람이 좀 더 사람-같을 수 있을 텐데... 나는 좀 더 나-같을 수 있고 함께는 좀 더 함께-같을 수 있을 텐데...
시멘트 건물, 모르는 사람들, 쌩쌩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각종 소음, 밤낮 없는 불빛이나 매연 속에서 ‘소통적 사람크기로 크기’가 어렵다. 오감과 육감에 늘 긴장을 달고 살아야 한다. 여기에 주변의 다양한 성인시설들이 더해진다.
어쩌다 시골에서 체험학습을 하거나 시골의 친척집에 내려오면, 아이들은 이보다 더 신기하고 신날 수가 없다. 가뭄에 단비를 만난 농작물들처럼, 조금씩 싱싱해지다가 점점 생생해지더니 이윽고 완전 쌩쌩해진다. 싱싱, 생생, 쌩쌩은 삶이나 자유, 자연과 같은 방향의 것이리라.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오늘날의 목동리는 자연도 인간도 일정한 방식으로 ‘근대화’ 되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아쉽다. 지난날의 목동리 삶을 말하는 것이 발전되고 분화된 사회와 생산력을 되돌려 목동리 같은 소박한 농촌공동체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다. 노자가 그리는 ‘작은 나라의 적은 국민’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이상사회도 아니고...
그렇지만, 이 시대의 제도나 관습 속에 일그러지고 작아진 소통과 인성의 모습과 크기를 볼 때, 목동리들의 삶은 하나의 방식으로 참고하고 복원해야 할 가치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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