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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경주 최부자

 ‘부자가 삼대를 넘기기 힘들다’란 말이 있다. 많은 한국재벌들이 100년을 견디지 못하고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며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유장한 산맥처럼 300년을 이어온 만석꾼이 경주 최부잣집이다.

 조선 팔도에 만석꾼은 많았지만 12대 만석꾼은 이 집안뿐이다. 명실상부한 최고 부잣집의 숨은 비결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제(가진 자의 책임)’에 있었다. 하여 고색창연한 최씨 고택 사랑채 복원공사 기공식에도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중요민속자료27호인 이곳 최 부잣집의 사랑채와 별당이 5억원을 들여 원형대로 복원됨으로써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현재 집터에는 화강암의 주춧돌 20여 개가 남아 있으며 신라 왕경(王京)건물 터에 있었던 유서 깊은 돌이라 한다. 신라 6부촌의 하나인 소벌도리공의 후손으로 신라 최고학자인 최치원과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 선생 등이 최씨문중을 대표하는 걸출한 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주 최 부잣집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대대로 내려온 몇 가지 ‘제가(齊家)철학’이 삭막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진사 이상 벼슬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시집온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소위 최씨가문의 육계명이다.

 먼저 ‘진사 이상 벼슬은 하지 말라’는 원칙에는 정쟁에 휘말리지 말라는 속뜻이 있다. 벼슬이 높아질수록 감옥이 가까워지고 정경유착으로 잘난 사람들이 패가망신하는 오늘의 정가를 보면 탁월한 선견지명이다.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는 원칙도 가진 자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최 부잣집은 만석이 넘지 않도록 소작료를 낮추는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했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상생의 원칙을 솔선수범한 것이다.
   
 ‘흉년에 논 사지 말라’는 원칙도 같은 맥락이다. 흉년이면 부자가 논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약육강식의 밀림법칙이다. 최 부자는 이런 부도덕을 철저히 금했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는’ 일도 가진 자의 덕망이다. 1년에 천석의 쌀로 과객을 대접했다고 전한다. 최 부잣집 사랑채는 식객으로 넘쳤으며 노잣돈에 남루한 과객에겐 새 옷까지 입혀서 보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자가 없게 하라’는 조항도 같다. 소작 수입 중 1천석을 풀어 주변의 빈민을 구제했다.

 ‘며느리들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게’ 한 근검(勤儉)정신도 남에게는 후하고 스스로에게는 엄격했던 단면을 보여준다.

 현재의 종손 최염(崔炎)씨의 조부인 최준씨는 왜정 시에 독립투사 백산 안희제와 의기투합하여 백산상회를 설립하면서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에게 많은 독립자금을 보냈다. 최씨가문은 평화시절에는 사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이끌었고, 망국의 국난에는 가산을 털어 독립자금을 내는 것으로 가진 자의 도리를 다한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제’였다.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정경유착과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일삼는 정치인과 재벌들에게는 최부자의 처신이 귀감이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최부자의 제가철학은 바로 ‘한’문화를 표방하는 것이다.
 
 최염씨가 소개한 육연(六然)이란 가훈도 기억에 남는다.

스스로는 초연하게 지내고(自處超然)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對人藹然)
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내며(無事澄然)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하고(有事敢然)
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며(得意淡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하라(失意泰然)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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