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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독립운동가 오면직 선생(1894.6.15~1938.5.16) 서거일

의열투쟁으로 친일세력을 응징하다

 


오면직 선생은 평생을 의열투쟁 활동에 불태운 독립운동가입니다. 우리에겐 의열투쟁하면 의열단이 제일먼저 떠오르는데 당시 의열투쟁을 하던 단체는 의열단 말고도 여러단체가 있었습니다. 오면직 선생의 의열투쟁은 크게 일본제국주의 세력척결, 일제 기관 파괴, 친일파 척결 이었습니다.

선생의 업적을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우리가 알고있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공원 폭탄의거는 원래 오면직 선생과 같이 의열투쟁을 하던 의열멤버들이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정확히는 당시 의열멤버중 이용준 선생이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훗날 김구 선생과의 논의끝에 거사는 김구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의 윤봉길 의사가 시행하기로 변경됩니다. 다음으로는 중국에 거주하고있던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 암살시도에 참여합니다. 당시 일본공사였던 아리요시 아키라는 중국 국민당정부의 장제스를 매수하여 국민당과 중국군이 만주를 포기하게 하는 밀약을 체결시킨 인물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의열투쟁을 벌였던 아나키스트 의열멤버들은 아리요시를 암살하여 밀약이 체결되지 못하게 막아야한다는 신념으로 암살계획을 세우고 준비에 착수합니다.

당시 서로가 내가 앞장서서 암살을 결행하겠다고 주장하여 결국 제비뽑기로 결정을 하였고 독립운동가 백정기 선생이 벌칙에 걸려 웃으며 내가 암살하게 됬다고 기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비록 아리요시 아키라 일본공사의 암살은 실패하였지만 이 사건은 상하이,베이징,난징,톈진 등 지역에 대서특필되며 국민당의 장제스와 아리요시 아키라의 밀약이 세상에 폭로되게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중국 국민당 장제스 정권은 위기에 처하게되었고 중국 정치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 후 오면직 선생은 일제의 밀정 이규서와 연충렬을 처단하였는데 이 두명의 밀정은 우당 이회영 선생을 일본 경찰에 밀고한 자 들이었습니다. 오면직 선생은 이규서와 연충렬에게 상하이에가서 자금을 입수하러 가자며 철교 부근으로 데리고 갔고 그곳에서 일본의 밀정 노릇을 한 것을 자백 받고 현장에서 사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사건은 밀정 옥관빈을 사살한 사건이었는데 옥관빈은 당시 일본 군대를 위하여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고 일본 관리에게 독립운동에 관한 밀정 행위를 하였습니다. 이에 선생은 아나키스트 멤버와 함께 수일간 잠복하여 기회를 엿보다 옥관빈을 사살하였고 <역도 옥관빈의 죄상을 선포한다>라는 제목의 전단을 배부하여 6개조의 죄목을 천하여 폭로하였습니다.

이 후에는, 김구선생과 함께 한국독립군 조직에 힘을 쓰셨고 한국독립군특무대라는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었는데 직접 거리에서 활동 자금을 모금하던 도중 중국 경찰을 앞세운 일본 경찰에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체포 과정에서 일본 경찰과 중국 경찰 다수가 부상을 당하였고 오멵기 선생은 평양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오면직 선생은 3•1운동 이후 1938년 일제에 의해 사형당하기 전까지 민족해방운동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처음에는 민족주의자로서 출발하였으나, 1930년 무렵부터는 아나키즘을 수용하고 의열투쟁에 주력하였으며 의열투쟁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세력과 친일파들을 척결하고자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자료 제공 : 정상규의 독립운동가 어플 >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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