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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 박사의 『유목민 이야기』 - 판노니아의 훈족

아드리아노플 전투가 있었던 378년. 동고트족과 알란족 그리고 훈족 세 족속으로 이루어진 만족이 판노니아 지방을 침략하였다. 당시 판노니아는 판노니아 프리마, 판노니아 세군다, 판노니아 발레리아, 판노니아 사비아 등 여러 속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들 만족 집단이 동부에 위치한 발레리아를 침략한 것이다.

당시 서로마는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맡고 있었는데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서고트족 집단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고 그들과 동맹조약을 체결했던 것처럼 판노니아로 침입해온 만족 집단과 동맹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들에게 어떤 지역을 정착지로 할당했던 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 사이에 의견이 의치하지 않고 있다. 또 이 세 족속들이 서로 간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던 지도 분명하지 않다. 훈족이 지배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동고트족과 알란족과 더불어 판노니아로 들어온 이 훈족 집단이 로마 제국의 영토 내로 들어온 첫 훈족 집단이었다는 점이다. 아직도 훈족의 주력은 다뉴브 하류의 로마 국경 너머에 있었다.

로마 제국은 이 판노니아 훈족을 여러 번에 걸쳐 동맹으로 이용하였다. 384년 알레만족의 일파인 유퉁기(Juthungi) 족이 라에티아를 침략하자 로마는 훈족과 알란족 기병대를 투입하여 이들을 격퇴하였다. 또 몇 년 뒤인 388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자신의 제권을 찬탈하려는 찬탈자 마그누스 막시무스와의 싸움에서 테오도시우스 황제를 도와서 막시무스를 무찔렀다. 앞에서 말한 찬탈자 에우게니우스와의 싸움도 판노니아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고트족 외에도 훈족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후 약 20년간 판노니아 훈족에 대한 언급은 사료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라차닌, 44쪽)

405년 다시 한 번 만족들의 이동물결이 크게 일어나 그 일부가 고트족 라다가이수스의 지휘 하에 판노니아를 거쳐 이탈리아로 침략하였다. 당시 로마 제국의 실권자 스틸리코 장군은 로마 군대만으로는 라다가이수스의 침략군을 격퇴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훈족에게 군사력 지원을 요청하였다. 당시 훈족의 왕은 울딘이라는 이름의 왕이었는데 울딘의 훈족은 침략군을 이탈리아 북부에서 손쉽게 격퇴하였다. 이 울딘 왕은 수년 전인 400년 경에 다뉴브 강을 건너 도망쳐온 동로마 제국의 장군 가이나스와 그의 고트족 집단을 공격하여 가이나스의 머리를 콘스탄티노플로 보낸 적이 있다. 독자적인 군사력을 가진 만족 집단이 자신의 영역 내에 들어와 정착하는 것이 자신에게 안전하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다.

또 이 울딘은 또 408년 동로마 군대가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을 위해 페르시아 국경으로 이동하였다는 것을 알고 다뉴브 강을 건너 트라키아 지방과 발칸 반도를 침략하였다. 그는 다키아 리펜시스 속주의 주요한 요새인 카스트라 마르티스를 점령하였다. 다급해진 동로마 측은 그에게 강화를 요청하였다. 그러자 그는 동로마 장군에게 하늘의 해를 가리키며 자신이 이 해가 비치는 모든 땅을 점령하는 것은 원하기만 한다면 쉬운 일이라고 떠벌렸다. 그는 전쟁을 중단하는 대가로 많은 공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로마의 외교적 술책이 있었던지 그의 부하 장교들이 동요하였다. 로마의 통치형태와 로마 황제의 인도적인 면모 그리고 로마 황제가 그의 뛰어난 병사들에게 기꺼이 많은 보상을 하는 것 등을 토론한 후 많은 장교들이 병사들을 데리고 로마 측으로 넘어가버렸다고 한다. 병력의 상당 부분이 이탈하였기 때문에 울딘 왕은 간신히 강을 건너 자기 땅으로 돌아갔다. 그 후 이 훈족의 왕이 어떻게 되었던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울딘의 이 재미난 기록은 5세기의 교회사가 소조멘(Sozomen)의 교회사에만 나오는 것인데 그의 책은 기독교 교회의 교리와 교회의 일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간간히 세속사의 중요한 내용들도 언급하고 있다.

울딘이 훈족 전체를 지배하는 왕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일부 훈족 집단의 왕이었다. 그는 판노니아의 훈족 왕이었을까? 그라차닌에 의하면 405년 라다가이수스의 이탈리아 침략 당시 판노니아 훈족은 로마의 동맹으로서의 의무인 침략군을 막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스틸리코는 다뉴브 하류에 있는 훈족의 본진에 도움을 요청하였다고 하는데 바로 울딘 왕이 그러한 훈족의 우두머리였다는 것이다. 훈족에 관한 깊은 연구서를 남긴 고 멘헨-헬펜 교수는 그라차닌과는 달리 울딘이 헝가리 훈족의 왕이었다고 말한다. (61쪽) 378년 이후 판노니아에 자리잡고 있던 훈족이 그 땅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그곳에서 몰아낸 어떠한 강력한 세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울딘 왕의 군대가 훈족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소조멘은 스키리(Sciri) 족이 울딘의 병력 가운데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집단이었다고 한다. 스키리 인은 게르만족에 속하는 부족으로 훈족의 지배를 받아 훈족 연합의 일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울딘 왕은 훈족이 지배하는 여러 집단들로 이루어진 유목민 연합의 우두머리였던 것이다. 408년 발칸 반도에서 그를 배반하여 로마로 넘어간 집단은 아마 훈족이라기보다는 그의 지배하에 있던 다른 부족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Sozomen, Ecclesiastical History tr. by Chester D. Hartranft. From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cond Series, Vol. 2. Edited by Philip Schaff and Henry Wace (Christian Literature Publishing Co., 1890.)

H. Gračanin, “The Huns and South Pannonia”, Byzantinoslavica 64, pp. 29-76 (2006)

Otto J. Maenchen-Helfen, The World of the Huns : Studies in Their History and Cultur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3)

김현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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