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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다나카의 만행경천사 십층석탑이 품고 있는 슬픈 이야기

 경천사 십층석탑은 1348년 개성근교 부소산자락에 세워졌다. 고려사에는 예종이 이곳에서 숙종의 추모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일반인에게도 이 석탑은 ‘병을 치유해 주는 약황탑’으로서의 명성이 자자했던 영물이었다. 고려인들이 사랑했던 석탑이었다.

 우선 이 탑은 날렵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준다. 마치 팔작지붕의 기와집들이 빼곡히 늘어선 마을을 보는듯한 풍요로운 인상이다. 우리나라 석탑들이 대부분 홀수인 점과 달리 층수가 짝수인 것도 흥미를 끈다.

 또한 이 탑은 기단부와 탑신부로 나뉜다. 기단부에는 부처, 용, 보살, 화초, 천부상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높이가 10층으로 보기도 웅장하지만 생김새도 독특하며 재료도 섬세하다.

 석탑의 나라로 불리는 우리나라에서도 탑의 재질은 대체로 단단한 화강암을 사용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이 석탑은 재질이 화강암이 아니라 회색 대리석을 사용하고 있다.   

 대리석은 화강암보다 재질이 훨씬 무른 재료이기에 더 정교한 조각이 가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체적으로 균형과 안정미를 갖추었고 세부적인 조각들도 나무랄 곳이 없는 희귀한 명품으로 평가된다.

 조선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석탑으로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십층 석탑이 있다. 이것은 경천사 십층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바로 경천사 십층석탑이 한 일본인의 사욕에 의해 온갖 수난을 당하며 현해탄을 오르내리는 비극을 맞게 된다. 문화재청이 발간한 ‘수난의 문화재’에 그간의 경위가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어쩌면 영원히 우리나라에서 사라질 뻔했던 위기를 당하였다.

 일제는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수많은 우리유적과 문화재를 약탈하기 위해 왕릉을 도굴하고 파괴하며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불법반출을 일삼았다. 얼마나 많은 우리문화재들이 유린되었는지도 모르고 있다.

 특히 시기적으로 통감부가 설치되는 1910년을 좌우해 문화재 약탈은 극에 달했다고 기록에 전하고 있다. 그림과 고려자기, 불상과 종, 기타 석탑과 불교미술품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훔쳐갔다.

 경천사 십층석탑도 그 와중에 있었다. 다나카 미스아키(田中光顯)는 일본의 궁전대신으로 문화재약탈자 가운데 가장 악랄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1907년 황태자 축하사절단의 일원으로 조선을 찾는다. 그러나 그는 줄곧 경천사 십층석탑에 대한 야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 석탑은 높이 13,5 미터나 되는 장신에다 탑에서 풍기는 상승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균형감이 일품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석탑을 자기 집 정원에 옮기겠다는 터무니없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누리던 다나카는 마침내 일을 저지르고 만다. 1907년 3월에 다시 조선에 온 그는 “고종황제가 기념으로 나에게 하사했다. 개성근처 절터에 있는 대리석탑을 도쿄의 우리집 정원으로 운반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한 무리의 일본인들이 경천사로 들이닥쳤다. 인근주민들이 저항하고 관할군수까지 직접 나와 항거하였으나 총검으로 위협하면서 석탑을 마구 해체하기에 이른다.

 날이 어두워지자 수십 대의 달구지에 옮겨 실은 석탑은 개성역으로 빼돌린 뒤 일본으로 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문화재 약탈이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백주의 강도행위였다. 다나카는 옛것을 좋아하고 고미술품에 대한 전문지식자로 백주에 자신의 권력을 남용한 강탈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어처구니없고 대담한 일본고위관리의 전대미문의 사기행각은 외국인 기자들의 고발에 의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된다. 

 영국의 조선특파원인 어네스트 베셀에 의해 처음 이 사실이 서방세계에 공개되자, 총독부는 거짓이라며 사실을 부정했다. 결국 연일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미국선교사 호머 헐버트씨가 가세하여 힘을 실어주면서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하며 일본을 압박하게 되었다.

 국내외 여론이 불리하게 되자 일본은 더 이상 약탈 반출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범행을 저지른 범인인 다나카는 그래도 버티고 있었다.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2대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1918년 전임자가 해결하지 못한 경천사 십층석탑의 반환문제를 풀었다.

 대한해협을 다시 건너온 경천사 십층석탑은 이미 심하게 훼손된 뒤였다. 애써 찾아오긴 했지만 돌아온 석탑은 광복 때까지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방치되었다. 1959년 경복궁 전통공예관 앞에 세워졌다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1995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다시 해체하여 복원작업을 했다. 무려 10년에 걸쳐 완벽하게 새것으로 복원되었다.
 
 멋진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복도에 앉아 있다. 고귀한 자태로 가혹한 운명을 견디고 꿋꿋이 서있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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