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수난의 문화재’에는 문화재를 훔쳐간 일본인들의 소행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그중에서도 경복궁 자선당을 통째로 뜯어간 일본인이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이다.
조선총독 데라우찌 마사다케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 파괴 작업을 교묘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우선 경북궁내에 조선총독부를 세우기로 작정하고 1915년 가을 경복궁에다 박람회(당시 명칭은 물산공진회)전시장을 만든다는 핑계로 궁궐안의 수많은 전각을 뜯어내었다.
남의 나라 궁궐에다 박람회 전시장을 열겠다는 발상부터가 무뢰한 짓이고 더구나 박람회를 개최하는 데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왕궁 전각들의 절반 이상을 뜯어냈으니 천인이 공노할 일이다.
2년 동안 헐려나간 경복궁 전각이 4천여 칸 2백여 동에 이르렀고 뜯겨나간 전각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 중 자선당은 데라우찌와 친분이 있는 오쿠라 기하치로의 손에 넘어갔다.
원래 자선당은 세종이 짓고 문종이 살았으며 단종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누구나 들어가 살고 싶은 욕심이 절로 난다는 자선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이 건물은 경복궁 동쪽에 있다하여 동궁이라 했다. 원래 동궁은 왕위를 계승할 왕세자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자선당은 경복궁의 여러 전각 중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축에 속하며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이전에도 건재했던 건물이었다. 자선당의 첫 주인은 세종의 아들 문종이었다. 이곳에서 단종을 낳았다.
그런가 하면 자선당은 궁녀들 사이에 ‘앵두궁’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버지인 세종이 앵두를 좋아해 세자 시절의 문종이 자선당 둘레에다 온통 앵두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서 깊은 자선당이 하루아침에 뜯겨나가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으로 옮겨졌으니 애통할 일이다. 그것도 모리배들의 간교에 의해 왕조의 궁궐들이 함부로 뜯어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쿠라는 건어물 가게로 사업을 시작하여 총포 수입상을 경영하면서 군부와 결탁하여 막대한 명예와 부를 쌓았으며 무역, 토목, 건축, 광업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오쿠라 재벌의 창업주가 되었다.
덕수궁 석조전 공사를 맡은 것도 바로 그의 회사였다. 압록강 유역의 목재를 대규모로 벌채한 후 일본 건설시장에 팔기도 했다. 조선총독부를 건설할 당시 지반공사에 사용된 말뚝재도 바로 이 회사가 공급한 목재였다. 조선에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설립한 장본인도 이 사람이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오쿠라는 조선총독 데라우찌의 하수인이 되어 마음 놓고 궁궐건물들을 손대기 시작했다. 그는 특별히 자선당 건물을 탐내 자기 집으로 옮길 수 있도록 데라우찌에게 부탁하였다.
결국 그의 뜻대로 해체된 자선당은 배에 실려 현해탄을 건너 오쿠라 저택으로 옮겨졌다. 데라우찌는 오쿠라의 집에서 새로 지은 자선당의 완공을 축하하는 낙성식 때 직접 참가했다고 한다.
이후, 오쿠라가 세운 오쿠라슈코칸이란 사설 박물관의 일부로 현판을 달게 된 자선당은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불타 버리고 건물의 석조 잔해만 남아 있다. 1917년 이곳 조선관에 진열된 미술품이 3,692점, 서적이 1만 5천여 권에 이르렀다니 오쿠라가 얼마나 많은 우리문화재와 유물들을 조선에서 약탈해 갔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도쿄의 오쿠라슈코칸에 가면 식민지 조선에서 약탈해온 석조유물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인 ‘이천향교방석탑’은 조선총독부가 직접 기증한 물품이다.
이 오층석탑은 원래 경기도 이천에 있었다. 그런데 1915년 경복궁에서 박람회 개최할 당시 야외전시장을 치장할 만한 유물이 필요하다고 하여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천에서 경복궁으로 옮겨온 것이다.
경복궁의 자선당을 뜯어 옮긴 오쿠라가 다시 욕심을 내었다. 그가 평양정거장 앞에 있는 칠층석탑을 탐내자 조선총독부가 이를 불허하고 대신 이천향교방석탑을 거저 가져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핑계가 참으로 가관이다. 오층석탑은 제작 상 특색이 없을 뿐 아니라 그저 그런 석탑이라 미술관에 놓고 진열할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오쿠라에게 가져갈 것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해괴한 이유를 달아 남의 나라 유물을 선심 쓰듯 개인미술관에 주어버린 것이다. 오쿠라는 조선을 경제, 문화적으로 침략한 최대의 파렴치범이다. 이렇게 부를 쌓은 오쿠라는 일본 8대 재벌에 속할 정도로 번창했지만 태평양 전쟁이후 연합국 총사령부에 의해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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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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