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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열 교수의 『광개토태왕비문과 환단고기의 整合性(정합성)』 上1802자로 이루어진 태왕비문의 위,변조 되지 않은 내용을 알아본다

지난 5월 31일 , 행촌 이암선생이 역사에 끼친 공덕을 기리기 위해 창립 20주년을 맞는 (사)행촌학술문화진흥원과 세계환단학회가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에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한바 있다. 이 학술대회에서 대전대학교 한의과대학 윤창열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2부로 요약, 정리한다.

 


광개토태왕비는 광개토열제 사후 2년 뒤인 AD414년에 그의 아들 장수열제가 父王의 정복업적을 기록하여 세운 勳績碑(훈적비)이다.

이 비석은 19세기 후반 발견되었으나 일본 육군 참모본부의 글자의 위조, 변조와 글자를 마멸시켜 그 참된 모습이 지금까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898년 戊戌年 운초 계연수 선생이 탁본을 뜬 것을 바탕으로 그 본래의 모습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다.

태왕비문은 모두 1802자로 이루어져 있고 戊戌謄本 당시 117자만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1912년 다시 탁본을 떴을 때 다시 138자가 완전히 마멸되어 있었다. 이에 계연수는 ‘廣開土聖陵碑文缺字徵實’이라는 글을 써서 138자를 복원하였다. 이를 근거로 하여 이유립은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聖帝聖陵碑文譯註’를 지어 후세에 전하였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비로소 위조 변조되지 않은 본래의 태왕비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환단고기』는 이 책이 세상에 공개되어 대중화된 지 40여년에 이르고 있지만 아직도 강단사학자들의 위서론에 휘말려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강단사학자들이 풀지 못하고 있는 難題들을 『환단고기』의 내용을 통해 해결하여 그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사료된다.

광개토태왕비와 같은 금석문은 당시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어떤 사료보다도 우선시 되는 일차사료이다. 論者는 광개토태왕비문과 『환단고기』의 내용이 10가지 측면에서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태왕비에서 고주몽이 북부여에서 나왔다고 하였는데 강단사학자들은 북부여 명칭의 시작을 3세기 후반 이후에 고구려 사람들이 불렀던 他稱의 명사로 보고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북부여가 BCE239~BCE58년까지 존재했던 나라이름이고 고주몽이 북부여 7대 임금으로 북부여를 계승하였음을 밝혀주고 있어 태왕비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내려주고 있다.
둘째, 태왕비에서 고주몽이 天帝之子요 어머니는 河伯女郞이라고 하였는데 『환단고기』에서도 고주몽이 天帝子요 河伯外孫이라하여 동일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셋째, 태왕비에서 고주몽이 알을 깨고 나왔다고 하였고 『환단고기』에서도 역시 알을 깨고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넷째, 태왕비에서 고주몽이 동부여를 탈출할 때 부여의 奄利大水를 건넜다고 하였고 『환단고기』에서도 淹利大水를 건넜다고 하였다. 이는 『삼국사기』의 엄사수(淹㴲水), 『삼국유사』의 淹水보다 더욱 정확한 표현으로 『환단고기』의 정확성이 더욱 드러나는 내용이다.

다섯째, 태왕비에서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 17세손인 광개토태왕이 이르렀다”고 하였다. 광개토태왕은 고구려의 19대왕이고 고주몽으로부터 13세손이다.

『환단고기』에 고구려의 國統은 북부여를 계승했고 고주몽의 血統은 북부여의 건국자인 해모수의 4세손이라 하여 4세+13세=17세가 되어 해모수로부터 계산한 것이다. 『환단고기』의 「삼성기上」에서 고주몽이 해모수를 太祖로 삼았다는 기록과 상통하는 것으로 오직 『환단고기』만이 이에 대한 해답을 내려준다.

여섯째, 태왕비에 광개토태왕이 18세에 등극하였다 하였고 『환단고기』에도 18세에 등극하였다 하여 두 기록이 일치하고 있다.

일곱째, 태왕비에 광개토태왕이 永樂이란 연호를 사용하였다고 하였는데 永樂이 광개토태왕의 연호였다는 것이 오직 『환단고기』에만 나온다.

여덟째, 태왕비에 광개토태왕이 倭를 추격하여 바다를 건너 임나가라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환단고기』는 임나가 대마도를 지칭한 것이며 후에 三加羅로 나뉘었다고 하여 임나가라가 대마도를 지칭한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는 유일한 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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