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그리스의 올림픽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고조선시대에 국중대회가 있었다는 사실은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소도제천(蘇塗祭天)의식은 온 나라 백성들이 모두 참여하는 올림픽경기였으며 고대 그리스 올림픽을 능가하는 우리민족의 전국체전이었다.
이런 사실은 박성수 교수의 저서 ‘단군문화기행’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선 그 뿌리는 환웅천황이 소도를 주관하며 백성과 의논하여 하나로 화백하였다는 신사시대까지 소급된다고 한다.
또한 소도제천을 거행하는 장소는 백산(白山)이다. 백산은 곧 배달을 의미하며 백산민족은 곧 배달민족이다. 따라서 백산은 천신이 강림하는 그리스 올림픽의 장소였던 올림포스 산과 같은 의미다.
백산은 곧 신산(神山)으로 소도제천을 거행하는 곳이고 소도란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이란 뜻이며 신단이 마련된 특별한 성역이다. 이것은 그리스 올림포스 산을 신역으로 인식했던 것과 같다.
위치를 보면 뒤쪽에 백산이 있고 신단수가 산의 입구에 있으며 신당과 신정(마당)이 있다. 제사는 신단수, 신당, 신정의 차례로 치러지고 이어서 흥겨운 신악이 연주되었다.
농악은 신악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진짜 신명이 나지 않는다. 신명(神明)이 난다는 뜻은 신의 강림을 의미하는 만큼 자신도 모르는 불가사의한 에너지가 분출하게 된다.
소도제천의 신악(神樂)은 나라가 위급할 때는 군악(軍樂)으로 변해 국난을 구하고 평화 시에는 다시 농악(農樂)으로 바뀌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다. 민족전체의 안정과 단결, 변영에 기여했던 것이다.
단군시대의 국속(國俗)이었던 소도제는 국토가 분열된 뒤에도 부여, 예맥, 옥저 등을 거쳐 마한, 신라, 백제, 고려로 이어졌다. 또한 고구려, 발해, 거란(요), 여진(금)으로도 국속은 이어졌다.
소도는 이처럼 삼신을 제사지낸 특별한 성역인 별읍(別邑)으로 신읍이었다. 그리고 이 신읍에 거주하던 사람들도 특수한 소명감을 갖고 사는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은 보통백성과는 달리 소도의 기풍과 기질이 있는 신민(神民)이었다. 이 기풍의 원천은 단군정신이었다.
소도인은 집단적으로 신읍에 살고 있었으며 홍익정신을 실천하고 평화 시에는 군중의 기풍을 선도하며, 전시에는 군의 선봉이 되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솔선했다. 이른바 ‘소도정신’으로 응축되었다.
소도정신이란 독서하고 습사(習射)하여 국학정신을 함양하는 것이다. 국학정신은 일명 ‘부루’정신이라고도 하였다.
이 소도정신이 중요한 이유는 신라의 풍월도처럼 화랑정신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또한 고려시대에도 화랑의 후신인 조의선인(皁衣先人)으로 전해져 국난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배달민족의 원형질이었던 삼신신앙은 전시에는 군신신앙의 원천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평화 시에는 풍작을 비는 농신신앙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삼신이 주재하는 바가 바람과 비와 구름이었고 그 밖에 인간 360여사를 관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도제천이 끝나면 마을대표들이 나와 백기(百技)를 겨루게 되는데 이른바 오늘날 올림픽과 같은 국중대회가 이어졌다고 한다.
단재 신채호에 의하면 현재 문헌상에 전하고 있는 경기종목은 여덟 가지로 팔희(八戱)이다. 추운 겨울날 얼음을 깨고 동군과 서군이 물속에 뛰어들어 승부를 겨루는 한맹(寒盟)이 있고, 오늘의 태권도와 비슷한 수박(手搏)이란 경기가 있었다. 일본의 유도, 중국의 쿵푸와 태권도가 모두 수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
다음은 검술(劍術)이며 무사들이 가장 중시했던 경기였다. 부여나 고구려의 무사를 선비로 불렸고 축지법에다 비승술까지 겸비했다고 전한다.
활솜씨를 다투는 궁술과 말을 타고 막대기로 공을 쳐서 골대에다 넣는 격구(擊毬)도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그 맥이 끊어졌다.
그 이외에도 금빛 나는 공을 가지고 희롱하는 곡예인 금환(金丸)이란 경기가 있었고 오늘날 승마와 같은 주마(走馬)와 사냥대회인 회렵(會獵)이란 경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고조선에서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던 선비의 존재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한량(閑良)으로 경멸당하거나 무위도식하는 사람으로 하대된다. 화려하던 무사도는 쇠퇴하고 문약(文弱)에 흐르면서 국력도 쇠약해졌다.
도련님이란 말도 원래 도령(徒領)에서 온 말로 화랑이란 뜻이다. 조선시대의 도령은 활 잘 쏘고 용감한 도령이 아니라 평생을 과거시험 보는데 인생을 탕진하는 문약한 선비로 변질되고 말았다.
단재가 이와 같은 역사의 무상함을 탄식하고 있다. ‘선비란 우리말의 선인(先人)에서 온 단어로 선비나 도령을 의미하였는데 고려시대에 와서 천민계급으로 전락하여 재가화상이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문약한 선비란 이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결국 선비의 소멸은 나라의 멸망을 부르는 궁극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재는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 |
|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