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권의 우리 고대 사서를 불태운 왜정치하에서도 천우신조로 양주동 선생이 감추어 두었던 소장본 “규원사화”는 남아있게 되었다.
이것은 고조선이 실사임을 확실히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서문과 조판기, 태시기, 단국기, 만설 등 5개 부분으로 구성된 이 사서는 조선 숙종조에 북애자가 눈물로 쓴 한민족사이다.
서문에는 과거에 낙방한 저자가 홀연히 붓을 던지고 3년 동안 전국의 사적지를 두루 답사하던 중 어느 산골에서 비장된 고조선 유기인“진역유기(이명 저)”3권을 입수하게 되어 ‘단군실사’를 저술하고 후세에 전하려고 일생을 바쳤다는 저자의 집필동기를 밝히고 있다.
먼 훗날 동지를 만나 훼손되고 왜곡된 우리역사를 바로 잡는데 쓰인다면 자기의 넋이라도 한없이 기쁘겠다는 간절한 소망도 담았다.
이명이 저술한 ‘진역유기’는 발해인이 쓴 ‘조대기’에 근거했으며 조대기는 ‘고조선비기’, ‘산성밀기’등과 같은 조선전기시대의 금서로 적어도 그때까지 실재했던 우리고대사의 중요한 사서들이었다.
특히 규원사화는 어떤 단군 사서보다 방대한 고대사서와 문헌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민족사학자 이상시는 “단군 실사에 관한 고증연구”에서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이 연구에 의하면 규원사화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대사서 43종을 분석인용하고 있다고 한다.
북애는 고대사서를 수집하기 위해 조선 팔도를 다니며 실로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많은 문헌들을 수집한 것이다. 따라서 ‘규원사화’는 어느 사서보다 우리고대사의 실증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태시기”에는 고조선의 선사시대의 기록으로 ‘치우씨’가 갑옷과 투구를 만들어 중국 대륙을 평정하여 중국인의 시조였던 황제(黃帝)를 제압하였다. 또한 ‘고시씨’는 농사와 목축을 관장했고 ‘주인씨’는 남녀간의 결혼법을 정했다. 문자를 발명한 ‘신시씨’는 말년에 천왕환웅이 태백산정에 천부인 3개를 놓고 승천했고 다음이 ‘단군’시대로 이어진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시기를 “배달국”으로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이러한 기록들이 생소하게 받아들여지겠지만 우리들의 생활과 관습 속에 그대로 살아 있는 예가 많다. 치우는 우리민족의 무신으로 숭상되어 액운을 방제하는 유래로 이어져 여러 문양과 마을을 지키는 장승으로 남아 있다.
농부들이 제사나 밥을 먹을 때 “고시레”하는 풍습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 고시씨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관습이고 지금도 서울지방에는 중매를 “주인선다”는 뜻은 주인씨에서 유래했다.
북애노인은 고조선을 47세 1195년 동안 존속된 것으로 밝혔다. 같은 연대인 중국의 하, 상 왕조와 관련사실을 찾아 규명했다. 예를 들면 고조선의 13세 홀달 단군 때, 조선군대가 하나라를 공격하자 하왕조가 화해를 청해와 수락했던 기록이 양국 고대역사서에서 확인된다.
북애는 이처럼 고조선과 중국의 문헌기록을 통해 단군조선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했다. 또한 이상시의 단군 실사에 관한 고증 연구에 의하면 규원사화에서 단군의 평균재위연수는 25년 5개월이라 했다.
단군과 동시대 존립했던 중국고대왕조인 은에서 주까지 47세 1236년으로 평균재위연수가 비슷하다는 점도 그 사실성을 더하고 있다.
특히 이상시의 단군 고증연구에는 규원사화와 중국의 고대사서의 기록이 일치하는 곳이 아홉 군데나 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예를 들면 덕을 잃은 하왕을 쫓아내는 신하가 있었다는 규원사화의 “단군기”의 기록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기록이 일치하고 있는 점이다.
서희건이 편저한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에도 한국 상고사를 일제와 식민 사학자들이 왜곡 말살한 진상을 파헤쳐 우리들의 그릇된 사관을 바로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는 3권에 걸친 방대한 한국 상고사의 실체와 일제의 한국사 왜곡 말살진상을 밝히면서 엄연히 역사가 있는데도 우리 국사에는 사라져 버린 고조선을 통탄하고 있다.
일제 때 우국지사들과 학자들이 목숨을 걸고 잃어버린 뿌리를 찾아 복원하려 했는데 광복 후 자유로운 세상이 되고난 후 그 역사마저 깎아 내리고 있으니 이것은 어쩐 일인가 하고 되묻고 있다.
북애도 규원사화에서 공자가 실존인물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으면서 공자가 흠모했던 “동이국”은 어째서 믿지 못하는가 라고 한탄했다.
규원사화 마지막 “만설”에 북애는 재야 지식인의 처절한 심경으로 소름끼치는 경고를 한바 있고 그 예언은 적중했다. “역사를 바로잡아 주체성을 되살리지 않으면 조선은 인접국가에 의해 패망할 것”이라 했다.
사대주의에 빠져 주체성을 살리지 못한 조정과 유학자들을 비판한 피눈물 나는 북애의 경고는 과연 그 당시에만 필요했던 깨우침이었을까? 이 물음은 이제 우리가 대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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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
※ 상기 내용 중 “47세 단군, 1195년 존속”의 내용은 『환단고기』를 비롯한 여러 고사서의 내용들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고조선의 국통을 이은 북부여와 고구려의 연대기와도 맞지 않음을 밝히며 『환단고기』에서 밝히는 고조선의 연대는 47세 단군, 2096년으로 나온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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