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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어용사학자들

 일본 어용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단군 고’라는 논문을 쓰면서 단군신화설을 처음으로 조작, 발표한 자다. 우리고대사를 말살하는데 일급 하수인인 셈이다. 그는 단군과 고조선을 말살한 지대(?)한 공적으로 일본천황으로부터 금시계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이마니시는 1916년 내한하여 당시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시행하던 조선사 편찬사업에 촉탁으로 위촉된다. 우리 상고사 부분인 단군조선을 말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단군조선을 말살하기 위해 온갖 억지논리를 동원하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를 몰래 변조했고 사대주의에 젖은 유가사서 등 상고사말살에 적합한 단편적인 사료만을 인용해 조선상고사를 말살했다.

 구체적인 사례들은 이상시의 ‘단군실사에 관한 고증연구’와 서희건이 쓴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등에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조선사편수회 역사 왜곡 3인방 중 한 명인 이마니시 류

 일본이 조선상고사를 말살하고자 하는 목적은 명료했다. 조선역사가 오천년으로 문화민족인데 비해 일본역사는 불과 1,300년밖에 되지 않아 문화총량에서 비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선을 영원한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선상고사를 잘라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섰기 때문에 이마니시의 논리가 허구라는 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첫째, 그는 역사말살을 위해 삼국유사의 고조선기사 중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고 되어 있는 나라 국(國)자를 인(因)자로 극비리에 변조했다. 그리고 이를 탁본한 영인본을 대량으로 만들어 소위 ’경도대학 영인본‘이라는 이름을 붙여 관계요로에 배포하였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뜯어고친 내용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즉, ‘옛날에 있었던 환국이란 고조선이 없어지고 환인이란 신화적인 인물이 있었다’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마니시가 발표한 ‘단군 고’는 고조선을 말살하기 위해 이처럼 억지로 변조되어진 것이다.

 둘째, 그는 중국사서에서 단군에 관한 기사가 전혀 없다는 점을 내세웠으나 이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단군조선의 전성기는 제13대 홀달단군에서 15대 벌음단군시대 약 100년(BC1843~1739)간이다.

 조선의 군대가 중국 하나라의 산서지방까지 공략하자 마침내 하왕조가 화친을 청했다는 기록이 조선사서와 중국사서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특히 윤내현의 저서 ‘고조선’에는 고조선과 문화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진 중국역사기록들이 방대하고도 실증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셋째, 단군과 고조선을 부인하는 근거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단군이나 고조선의 기록이 없고 삼국시대부터 시작한 점을 들었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저술시기가 AD1145년으로 당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조공을 받쳤던 여진족이 중국의 송나라를 정벌하고 이른바 금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리고 고려는 금나라의 신하국으로 격하되었다.

 금나라는 백두산을 영산으로 봉하고 단군을 개국시조로 받들어 그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금나라의 사서 ‘금사예지(金史禮志)’에 기록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으로 고려가 삼국사기를 찬술할 때 단군을 개국시조로 기술할 수 없었으므로 삼국이전의 역사는 쓰지 않았을 뿐이다.

 넷째, 조선사 편찬방침으로 ‘편년체’로 정한 것부터 단군조선을 삭제하기 위한 음모였다. 수 천 년 전의 고대사를 편찬하면서 ‘몇 년 몇 월 몇 일에 그런 사실이 있었느냐’면서 자료를 제시하라는 것부터 억지였다.

 또한 그들이 조선사를 새로 쓸 필요도 없을 뿐더러 수많은 인원과 예산을 투입하면서 전국을 뒤져 20만권의 고대 사서를 모두 소각한 이유도 단군조선을 송두리째 지우기 위한 음모요 악의적인 작태였다. 
 
 다섯째, 이마니시는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가 바로 단군이라는 터무니없는 낭설을 주장했다. 따라서 현재의 조선민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망언도 늘어놓았다. 단군의 고조선 개국연대가 BC2333년의 일이고 북부여왕 해모수의 입국은 BC59년으로 일이므로 그 사이엔 실로 2,275년이란 장구한 연대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군과 해모수를 동일한 인물로 취급한 터무니없는 과오를 범했다.

 아울러 ‘조선사편수회’에서 이마니시와 함께 상고사 말살에 앞장선 조선인 어용사학자는 이병도와 신석호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주구노릇을 했고 해방 후에도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의 교수로서 잘못된 역사왜곡을 바로잡기는커녕 식민지사학을 계속 주장했다.

 민족반역자로 처단되어야 마땅할 사람들이 국사편찬위원회와 이른바 강단학파를 주도하며 많은 제자들에게도 학맥을 강요했고 지금까지 식민사관으로 우리역사를 오도하게 한 과오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육당 최남선은 단군조선을 비롯한 조선 상고사를 되살리려고 신명을 걸고 투쟁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사서 43종을 인용하여 쓴 규원사화에는 단군조선이 47대 1,195년을 존속했다. 하루빨리 우리나라 강단학파의 왜곡된 학맥이 광정(匡正)되기를 바란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 상기 내용 중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의 내용은 서기전 239년에 북부여를 개국한 해모수와 고구려를 개국한 고주몽(북부여 7대단군)과의 관계는 아들이 아닌 고손자가 된다고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47세 단군, 1195년 존속”의 내용은 『환단고기』를 비롯한 여러 고사서의 내용들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고조선의 국통을 이은 북부여와 고구려의 연대기와도 맞지 않음을 밝히며 『환단고기』에서 밝히는 고조선의 연대는 47세 단군, 2096년으로 나온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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