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만, 세계의 화약고로 급부상하다
가. 1890년대의 급변하는 동아시아
조선정부가 일본의 요구에 의해 개항을 한 것은 앞으로 벌어질 국제전의 전초전일 뿐이었다. 일본의 야심은 동아지중해의 패자가 되는 것이었으며, 나아가 아시아의 맹주가 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경기만은 세계의 화약고로 급부상하게 된다.
1890년대는 동아시아가 역사의 극적 전환을 맞이하는 시기였다. 일본이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동아시아의 이웃나라에게 압박국으로 등장한 시대였으며, 중국은 국제관계의 급변하는 질서 속에 자국을 근대적인 국가로서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시기였다.
![]() |
| CNTV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청일전쟁' 이미지 |
더욱이 조선에서는 국내문제를 빌미로 외세가 개입하는 전례를 남기게 되었고 나아가 서구열강의 탐욕스러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인들에게는 해군력을 앞세운 제해권 장악이 제국주의가 확장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원동력이었음을 인식한 데 의의가 있었다. 이를 증명하는 첫 시발이 청일전쟁이었다.
나. 일제의 야욕
일본은 1894년 7월 아산 앞바다의 풍도해전으로 시작된 청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동북아시아, 특히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증대하기에 이른다. 9월 17일, 황해에서는 일본 연합함대의 군함 12척과 정여창제독이 이끌었던 북양함대 소속 함대 14척이 전투에 돌입했다.
이 황대대전은 근대적 해군끼리 벌인 최초의 전투였으며, 사상 최초로 달리는 기선 군함들끼리의 해전이기도 했다. 그리고 1904년, 인천 앞바다와 여순에서 러일전쟁을 발발시킴으로써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고 만주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는 교두보를 쌓게 된다.
결국 조선의 근대화는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었으며, 이는 해양력을 바탕으로 한 포함(砲艦)외교에 굴복한 일이었다. 해양력을 천시하고 해양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던 조선은 임진왜란 등을 당해 국기가 흔들렸음에도 여전히 해양력을 경시하다가 결국은 그로 인해 망하고 만 것이다.
지정학적 요충지, 한반도 - 동아지중해의 중심
일본의 저명한 문예평론가이자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그의 책 「일본 정신의 기원」에서 “중국·몽골·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한반도가 있어 이곳에서 침입이 일차적으로 저지되었다”고 적고 있다. 14세기에 중국에서 아라비아에 이르는 지역을 순식간에 정복한 몽골도 한반도를 완전히 지배하는 데에는 30년이나 걸렸다.
몽골이 일본 정복을 단념한 이유는 일본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가미카제(神風)가 불었기 때문이 아니라 고려의 저항에 힘을 소진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대륙 지배시도가 좌절된 것도 역시 한반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일부학자들은 당시 일본의 군사력이 세계 최강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강력한 해양력이 대륙을 향해 팽창하려다가 한반도에서 좌절되고 만 것이다.
동아지중해 전쟁역사의 승부처, 경기만
이렇게 한반도는 동아지중해의 중심에 있으면서 물류와 문화가 교환되는 허브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힘의 균형을 잡아주는 조정자 역할을 해왔다.
또한 동아지중해에서는 한반도를 장악한 국가가 동아지중해의 강자가 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 최대의 만인 경기만은 역사적으로 해양자원, 해양교통, 물류의 경유지, 비옥한 농경지, 내륙진출의 요지로서 동아지중해에서 국가 간 역학관계의 중핵(中核)의 위치에 있었다. 경기만은 항상 각국의 힘이 충돌하는 각축장이었다.
경기만을 장악한 국가는 동아지중해의 승자가 될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6부가 곧 이어집니다
< 글 : 상생방송 구성작가 김덕기 >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