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열음, 인성 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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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
역지사지 그리고 여행 - 역지행지(易地行之)
다양한 만남들 속에 나누며 함께하는 사회적 삶을 구성해가는 소통의 문제에서 맹자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의지와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역지사지는 문자 그대로 나와 상대의 자리나 역할, 처지, 입장(standpoint)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는 일이다.
역지행지(易地行之)는 역지사지를 넘어 생각뿐만 아니라, 몸으로 직접 상대와 자신의 입장과 역할을 일정한 방식으로 바꾸어 함께 반성, 체험해보면서 보다 ‘큰 소통’을 실현하려는 진일보한 단계라 할 수 있다.
맹자의 역지사지는 나도 너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뜻이다. 열음의 한 방법이다. 너의 입장이 되어보면, 나만 나가 아니고 너만 너가 아님을 알 수 있고, 하나의 방식으로 나도 너요 너도 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의 처지와 문제를 내가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가 실제로 너가 될 수는 없다. 이는 그리하여 ‘나의 감정을 너의 감정 속으로 옮겨 넣는’ 감정이입(感情移入, Einfühlung)으로 나는 상상 속에서 나의 한 다름인 너의 처지가 되어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조금은 ‘너-적으로’ 너를 생각해보고 나를 생각해보고 세상을 바라봐 보자는 뜻이다. 이때, 나와 남, 세상이 이전과는 달리 보이게 될 것이다. 이는 이들을 보는 나의 눈이, 내가 약간은 네가 되어본 후이므로, 적지 않게 변하고 열렸기 때문이다.
네가 되어 본다는 것은 상상일 수밖에 없지만, 너의 자리에서 혹은 너의 자리에 서 나를 열려 하고, 나를 떠나려 하고, 너를 더 생각해보고, 너를 더 알려는 노력은 실제다. 어찌 보면, 상상도 일종의 실제요 현실이다.
역지사지를 넘어 역지행지로 나아갈 때, 우리는 상대의 처지를 보다 더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역지행지(易地行之)는 상상과 생각의 차원에만 머무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상대의 역할을 해보는 일이다. 역할극은 역지행지의 한 방식이라 할 것이다. 이 역할극은 행동으로 ‘나가 남이 되어보는’ 기회다.
역지행지는 자신의 자리나 역할, 처지를 상대의 자리나 역할, 처지와 바꾸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과 다른 상대의 처지와 행동을 이해하는 힘을 기르면서, 마침내 자신의 사고나 느낌, 행동의 방식을 점점 열어가고, 자신의 ‘사람됨’까지도 바꾸어가는 계기다. 이는 그러니까 다름과 ‘더 함께’이기 위해서 ‘더 다름’이 되어보는 기회라고나 할까?
하나의 역지행지 프로젝트에서는, 나와 나의 소통 상대가 물질적, 정신적, 사회적, 감정적 크기나 다름 등에서 서로 다른 각자의 자리나 역할, 입장을 바꿔 소통하며 행동해보기, 규칙을 만들고 익히기를 적절한 프로그램에 따라 몸소 실행-해보고, 수평이나 민주, 열음, 배려 등의 소통크기를 키우는 가치들을 찾아가고 지향하면서, 전문가와 함께 그 소통의 방식을 자유롭고 진지하게 반성하고 검토해보는 일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는 나는 너가 더 되어보고, 너를 더 만나면서, 나를 더 열어볼 수 있는 기회요 방법이다. 너, 다름을 더 만나고 더 알 수 있을 때, 자신의 생각을 더 키우고 더 여는 속에 나와 너의 소통크기는 훨씬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생각 사(思) 자가 들어 있는 역지사지이니, 생각까지만 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지사지에 행할 행(行) 자가 들어가 진일보한 역지행지도 약간만, 상상으로만 상대가 되어 상대처럼 행동해보는 정도다. 그러므로 평소 역지사지하고 역지행지하려는 기본자세의 체득이 중요하다할 것이다. 길들여진 자세는 일회성이 아니라, 늘 내 옆에서 ‘방향을 가리키는 바늘’인 방침(方針)일 수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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