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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상고사의 열쇠, 북부여

 환단고기에 의하면 단군왕검은 나라를 세우면서 신교(神敎)삼신문화의 우주관 즉, 삼신의 원리에 따라 나라를 삼한인 진한, 번한, 마한으로 나누어 통치했다. 이것이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다.

 단군왕검은 대(大)단군으로 요동과 만주지역에 걸쳐있던 ‘진한’을 직접통치하셨고 중국으로 가는 요충지인 요서지역의 번한과 한반도에 있던 마한은 각각 부(副)단군인 왕이 통치했다. 마한은 천(天)의 정신, 번한은 지(地)의 정신, 진한은 천지의 주인인 인간(人間)을 상징했다.

 그 후 22대 색불루 단군(2왕조로 분류)이 아사달로 도읍을 옮기고 진한은 진조선, 번한은 번조선, 마한은 막조선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러나 진한이 병권을 소지하여 조선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3왕조로 분류되는 44대 물리 단군은 국명도 대부여로 바꾸고 국정쇄신을 위해 노력했으나 사냥꾼 우화충의 반란으로 피난길에 붕어하고 만다. 이를 계기로 진조선의 전권이던 병권을 모두 행사함으로써 기강이 문란해지고 삼한관경제가 무너지면서 쇠망의 길을 걷게 된다.  

 47대 고열가 단군이 왕좌를 두고 산으로 떠나자 진조선은 해모수의 북부여로 계승되었고 고두막한에 이어 주몽의 고구려로 이어진다.

 해모수는 고조선의 제후인 고리국 출신으로 기원전 239년 북부여를 세우고 단군으로 추대된다. 번조선은 중국 전국시대 혼란을 피해 넘어온 한족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 중 위만이 부하 1천명을 거느리고 준왕에게 투항했다. 서쪽 변방 수비대장으로 임명했는데 준왕을 몰아내고 기원전 194년 왕이 되었다. 같은 해 위만에 쫓긴 번조선의 장군 탁이 백성을 이끌고 한강 이남으로 이주해 마한을 세웠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번조선 출신의 대부호 최승은 바다를 건너 남으로 내려와 평양에 기원전 195년 낙랑국을 세웠다. 진조선과 막조선의 백성들도 한강 아래로 내려와 진한과 변한을 세웠다. 이것이 남삼한이다. 이 시대를 한국사는 ‘열국시대’라고 한다.

 북부여는 4세 단군에 이르러 한무제가 번조선의 우거를  잡고 그 여세를 몰아 북부여를 침공한다. 이때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사군을 설치하려는 한나라 군대를 물리친 영웅이 바로 고두막한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한무제가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한사군이 평양과 황해도에 있었으며 중국이 조선을 다스렸다고 주장했다. 한민족 역사가 중국 식민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식으로 만들어버렸다. 동북공정을 추진하던 중국은 일본이 조작한 한사군이론을 근거로 본래 한강이북은 중국영토라고 한다.

 고두막한은 47대 고열가단군의 직계후손으로 졸본에 나라를 열어 졸본부여(동명부여라고도 한다)라 하고 스스로를 동명왕이라 했다. 그는 북부여의 5세 단군으로 즉위했다. 그의 아들 고무서 단군에 이르러 짧은 역사를 끝내고 고주몽의 고구려로 계승되었다.

 북부여는 고조선과 고구려를 이어주며 한국 상고사의 국통을 바로잡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런데도 식민사학자들은 위만정권을 고조선의 계승자로 앉히고 위만정권이 망한 후에 그 자리에 한사군이 설치되었다고 주장한다. 북부여는 간 데 없고 중국의 식민지인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강단학파들은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를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아버지로 만들었다. 주몽은 해모수의 고손이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해모수와 고주몽을 부자지간으로 만들었다. 결국 이런 역사왜곡으로 180년에 걸친 6대 북부여단군의 역사는 증발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들이 없던 6세 북부여단군 고무사는 천제의 아들이라 자처하는 고주몽을 둘째딸 소서노와 혼인시켜 대통을 물려준 것이다. 마침내 주몽은 북부여 7세 단군이 되고 나라이름을 고구려로 바꾸었다.

 중국역사서인 ‘신당서’에는 고구려를 900년 역사로 기록한 내용이 있는데 우리가 아는 7백년(기원전 37-668)보다 2백년이 많다.

 신라 최치원도 당나라 유학 당시 고구려 역사가 9백년이란 사실에 놀랐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해모수가 나라를 세운 기원전 239년을 합산하면 일치한다. 그러므로 북부여는 ‘원고구려’라 할 수 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장수 대중상도 나라이름을 ‘후고구려’라 칭했다. 이것이 대진의 첫 나라이름이다.

 대진(大震)의 진은 동방이란 뜻으로 위대한 동방의 나라란 뜻이다. 이른바 해동성국이란 칭호를 불릴 만큼 강성했다.

 발해란 이름은 당나라가 우리나라를 제후국으로 폄하하여 붙인 이름이다. 동북아의 주인이란 뜻으로 연호를 쓰고 황제 칭호를 사용했다.

 부여는 4세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다. 이른바 야마토(大和)정권을 건설했다. 일본학계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의 위지 동인지에 보면 부여사람들은 음식을 나무그릇에 담아 먹고 서로 고개 숙여 인사하며 무릎을 굻고 앉고 말을 조용히 한다는 모습은 오늘날의 일본인에게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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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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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준형 2018-09-11 21:56:15

    우리나라 역사는
    마고☞황궁☞환국(환인)☞신시배달국(환웅)☞고조선(단군)☞열국시대☞오국시대☞남북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대한제국시대☞일제강점기와임시정부시대☞남북분단시대☞냉전시대☞남북휴전분단시대 이거 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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